「역사와의 대화」는 정치지도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온 국민이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정의의 프리즘으로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비상수단을 쓰고 있다. 역사 속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고히 보여주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같이 보인다.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명분에 동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그럼에도 적지 않은 국민들은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과 총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의를 이루느냐는 방법의 각론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취임초부터 법치가 아니라 인치라는 지적을 받은 문민정부가 역사에서의 과거청산이라는 거대과제를 어떻게 정의롭게 처리할지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하여 사법처리하겠다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정의의 명분을 단단히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명분을 법의 수단으로 관철하려니 불기소처분, 소급입법, 특별법, 개헌논의등 정신 못 차리게 얽히고 설키기도 하였다. 여야의 정치권은 서로 진흙탕싸움을 벌이고, 정치개혁의 태풍은 진로를 예측할 수 없이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의 정쟁을 귀담아 듣기에 염증이 났지만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신장시켜 정의를 이룰 수 있을지 냉철하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논리에 침식
중요한 문제는 대부분 법의 이름을 빌려 거론되는데, 법치주의의 근본원리와 기본정신이 정치논리에 의해 침식당하는 현실을 보며 정의는 결코 정치인들의 슬로건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내재적 조건들로 판단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첫째로 정의는 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진실은 한 점 의혹없는 투명성을 말한다. 대선자금등 정치권의 검은 돈이 공개되지 않고는 위장된 정의일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는 공개적 진실에 바탕을 둔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둘째로 정의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언제는 5·18에 공소권이 없다던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모든 관련자들을 기소하겠다고 표변하고, 『개헌을 불사하겠다』던 논리가 하룻밤 사이에 『특별법으로 충분하다』고 뒤집히는 것도 정의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처사이다. 앞으로도 검찰은 물론 사법부와 정치권에서 일관성의 자세를 정립하지 못하면 그런 헷갈리는 「정의」의 깃발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정의는 형평을 손상시켜서는 아니된다. 추상적 개념의 정의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형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전직대통령들을 구속하였지만 이와 관련된 정치인, 경제인, 친인척등을 어떻게 공평하게 처리해야 할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검찰로서도 고민이 있겠지만, 비자금사건 중간발표에 대하여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없는 측면이 여기에 있다.
넷째로 정의는 목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절차도 중요하다. 성서를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특히 법치주의는 절차적 정의가 무시되어서는 뿌리내릴 수 없다. 역사에 정의를 세우는 과정은 한 차례 사정의 칼날이 회오리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별법의 처벌대상을 미리 예단하는 식의 즉흥적 발상은 절차적 정의의 근본에서 어긋난다.
○응보아닌 사랑을
다섯째로 정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스스로 겸허하게 갱신되어야 한다. 정의는 높은 가치이지만 매우 미묘한 성질의 것이다. 정의를 강조하다 보면 은연중 눈썹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독선적이거나 잔인해진다. 「정의의 극치는 부정의의 극치(Summum ius, summa injuria)」라는 법격언도 있듯이, 정의는 응보가 아니라 사랑이나 평화같은 보다 높은 가치에 봉사해야 한다. 「정의는 정의만 지향할 때 이내 정의 이하로 떨어진다」는 라인홀트 니버의 표현은 되씹을만 하다. 진실에도 사랑의 진실과 증오의 진실이 있다듯이, 요즘 급속히 추진되는 정치적 「정의」추적에 혹시 분노와 보복이 들어 있다면 은연중 부정의의 여울에 발 담그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에서 정의의 조건들을 몇 가지로 조명해 보았지만, 결국 우리는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에 집약된다. 이제는 수천억원의 재벌이나 대통령이 되어도 인간이 바르지 못하면 철창신세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으로 반듯한 인간상을 최선의 가치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제대국, 선진화, 세계화등 허황한 구호들보다도 정말 정의로운 법치국가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역사의 강물을 두 번 건너는 어리석은 민족이 되지 않을 정의에의 길이라 생각한다.<서울대교수·법사상사>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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