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세가족」 태생적 한계로 잇단 불화/범여권 포용 노력도 잠시 본격 제2창당길「구국의 결단」 3당합당의 산물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이 6일 탄생한지 5년 10개월 13일만에 굴곡많은 삶을 마감하고 「신한국당」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달 22일 김영삼대통령의 당명변경 지시가 나온지 꼭 13일만이다.
민자당의 지난 5년10개월은 문자그대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갈등의 연속이었다. 이는 「세지붕 한가족」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민자당은 지난 90년 1월22일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총재와 야당이던 통일민주당 김영삼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총재가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 소속의원 2백16명의 거대여당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동거초기부터 역대 여당에서 볼 수 없었던 극심한 내분양상이 벌어졌다. 지난 90년3월 박철언 정무1장관의 김영삼 대표견제파동에서 시작된 민자당 내분은 90년10월 내각제각서 유출파동, 91년말 김대표의 대통령후보조기 가시화요구파문으로 이어졌다. 92년4월 14대총선에서 과반수에 1석 모자라는 의석을 얻어 사실상의 패배를 기록한 것은 이같은 집안싸움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12월의 14대대선에서는 후보경선과정에서의 파란에도 불구, 낙승해 정권을 재창출해냈다.
현정부출범이후에도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민주계의 끊임없는 「YS당」만들기시도는 민정계와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지난해 12월 김대통령의 「세계화」선언에서 비롯된 당명개정, 지도체제변경등의 개혁작업은 끝내 대주주인 김종필 대표의 축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민자당은 당명을 바꾸기 위해 공모까지 실시, 통일한국당을 새로운 당명으로 확정해 뒀으나 김대표가 탈당하자 이를 유보하고 당마크만 바꿨었다. 김대표 탈당사태는 결국 민자당에 지난 6월 지자제선거참패라는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지자제선거패배후 잠시 범여권포용 노력이 있었으나 노씨 부정축재비리가 터져나오면서 이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여권핵심부는 당명변경등 「제2의 창당」을 결심해 실행에 옮기게 됐고 민자당은 집권자의 퇴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역대여당의 전철을 밟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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