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악한 과거」 청산 도도한 물결”/국민들 경제성장 바탕 구원 단죄에 자신감/궁극적 동기 의구심·정국혼미 등 극복 과제『지금 한국정치는 극히 위험한 러시안 룰렛게임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은 이 참에 누가 거짓말쟁이 정치인으로 판명날지 지켜보고 있다』
한 국회의원의 말처럼 한국은 최근 「추악한 과거의 청산」이라는 도도한 시대조류에 휩쓸리고 있다. 민주화를 향한 진보의 물결이 구원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그간 억눌렸던 분노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79년 12 ·12사태후 8개월만에 국민앞에 대통령으로 당당히 나섰던 전두환씨. 그는 이후 15년이 경과된 지난주 당시와 마찬가지로 대머리의 그 모습 그대로 국민앞에 나섰지만 그를 둘러싼 역사적 상황은 판이하게 변해 있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할 당시에는 그가 역사를 잡았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서슬퍼런 역사가 그를 잡고 있는 것이다. 통렬한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전씨 뿐만아니라 2주전에는 그로부터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쿠데타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6억5천만달러의 비자금을 축재한 혐의로 구속됐다. 여기에 정치권에 돈을 댄 40대 재벌 및 검은 돈에 연루된 정치인들까지 뒤섞여 정국은 극도의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정국 회오리의 시작은 79년 쿠데타와 뒤이은 광주사태의 주동자를 처벌하기 위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법 제정지시로부터 비롯됐다. 두가지 사건은 한국정치판에서 언제나 「신발안에 돌아다니는 돌」처럼 껄끄러운 현안이었다.
한해 25만달러에 달하는 연금과 기타예우를 받으면서 호의호식해온 전·노씨가 두사건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이들은 자신이 누려온 절대권력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이었는지 법의 영역밖에 있는 것 같았다.
광주시민과 야권인사들은 두사람의 처벌을 주장해 왔지만 김대통령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원동력이 됐던 「정의의 힘」을 과소평가 했었다.
지난 2년에 걸쳐 TV 다큐멘터리, 언론보도 기사들이 봇물터지듯 쿠데타와 광주사태의 진상을 파헤치면서 쿠데타세력 처벌을 외치는 야권의 요구도 거세지자 국민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정치적 생존을 위한 승부수를 함께 고려한 김대통령은 결국 국민 여론에 굴복, 태도를 전환하게 된 것이다.
과거와의 대결에 온 나라가 내몰리게 된 한국의 국민들은 지금 부끄러운 과거를 통탄하고 민주 승리의 자긍심으로 기뻐해야할지 아니면 새로운 기백으로 과거청산에 나서게 된 김대통령의 궁극적인 동기를 의심해야할지 모르고 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된 나라중에서 한국처럼 전격적이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과거」를 심판대위에 올려놓은 나라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유교의 나라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준엄한 과거단죄에 나선 원인은 바로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에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부패와 압박의 역사가 국민들로 하여금 정의를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과거청산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자신감은 또 이들이 일궈낸 경제적 성공에서 연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과거청산에 따른 혼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야권은 과거청산을 통해 지난 지자제선거에서 참패한 민자당의 인기를 끌어올리려는 김대통령의 정략을 견제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반면 김대통령은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김종필씨를 자신의 임기안에 정치무대에서 은퇴시키려 결심하고 있다. 갈수록 악화하는 한국의 정치혼란의 중심에는 3김의 라이벌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카네기재단의 선임연구원 셀릭 해리슨은 『한국의 과거청산결과 거대한 정치적 혼돈이 야기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사회의 분화로 귀착될 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비리척결과 과거청산을 위해 단호하게 나서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이 나라 부패가 척결되고 정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없을 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결코 안주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수주일간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사건전개속도를 고려해 볼 때 한국인들이 꿈꿔온 변화는 어쩌면 더 빨리 실현될 수 있을 지 모른다.<정리=이상원 기자>정리=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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