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북한이 최근의 우리 국내상황을 오판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지만 미국은 지난 10월부터 대북한 경고의 톤을 높이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국내문제로 오사카 APEC(아태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김영삼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북한 경계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무부, 국방부도 최근에는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인상이다.이처럼 최근에 미국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데 대해 한국국민들의 반응은 다소 복잡하고 미묘한 데가 있다.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대북경고는 북한도 북한이지만 한국이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대한 경고라고 해석하는 것같다. 특히 최근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으로 온 나라가 다른 일에는 모두 손을 놓고 있는 것같은 상황을 보면서 미국은 한국이 과연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여 대한민국을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정부와 국민이 하루 속히 정신차리고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냉전이 종식된 후에 미국이 해외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킬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에 새 명분을 찾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문제를 이용했고 이제 그 문제도 일단락됐으므로 또 새로운 명분이 필요하여 있지도 않는 북의 도발가능성을 떠들고 있다고 한다.
○미 의중 두해석
그런데 위의 상반된 듯한 두 해석은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해석 모두 실제로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우리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최근 북한사람들은 미국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군부가 너무 강경해서 우려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가을 미군헬기가 북한지역에 추락했을 때 미국측이 접촉한 북한 민간관리들은 북한군부 때문에 미군조종사의 석방이 지연되고 있다고 서슴없이 북한군부를 비난한 일이 있는데, 최근에는 북한군부가 전쟁을 도발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과 만난 북한사람도 자기네 군 때문에 우려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일까? 정말로 북한의 고위관료나 당료들은 북한군이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의심나는 점은 북한군의 도발위협을 말하는 북한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북한군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더 많은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 점이다. 즉 그들은 북한군을 위험한 아이들로 그려놓고 위험한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만일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사람들의 말을 단순히 협상전술의 일환으로만 간주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북한상황을 볼 때 북한군부가 전쟁을 도발할 위험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북한군부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남북한의 군사력균형은 핵무기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 자명하므로 행동을 한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일이 군을 철저하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군을 견제할 세력은 북한내에는 없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대북한 전쟁억제태세를 강력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만약 북한군부가 강경하다고 한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에 우리측의 반응이 어떨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밝혀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군부를 설득하기 위해 선물을 더 주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강경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함으로써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물을 주는 대신 신빙성있는 경고를 해 두어야 한다.
○선물의 역효과
다만 전쟁억지를 위해 경고를 하는 경우 북한이 우리의 경고를 그들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모험주의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북한을 안심시킬 수도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침체 속에서 김정일의 정권인수가 미완성인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정신적으로 정상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울 줄 안다. 따라서 96년봄 식량부족현상이 악화하면 북한이 어느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더욱이 남한은 총선으로 정신없는 시기에 어떤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온 힘을 집중해야 할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다. 전쟁을 막지 못하면 다른 모든 것은 헛수고가 된다. 경제발전도, 민주화도, 세계화도 모두 전쟁이 나지 않을 때 생각할 수 있는 일 들이다.<김경원 사회과학원장>김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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