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체제기세… 유고땐 정치적 혼란 우려/후계논의서 민족·보수파 압달라 권한 강화파드 빈 압둘 아지즈(73)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중태인 것으로 알려져 후계문제와 향후 체제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왕이 건강 진단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힌 뒤 용태에 관해서는 내내 침묵하다가 중태설이 나돌자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 오히려 중태설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우디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현지 외교관들과 의사들은 왕이 뇌혈전으로 회복이 의심스런 상태라고 전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4일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시작된 걸프 연안 6개국의 걸프협력회의(GCC)에 사우디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한 사람은 파드 국왕이 아닌 압달라 왕세자였다. 파드 국왕이 사우디가 사실상 주도하는 GCC 연례회의에 불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도 의회도 없이 회교 율법에 따라 왕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서 왕의 유고는 곧 정치적 불안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더군다나 지난달 수도 리야드에서 친미 왕정체제에 반발하는 세력이 미군 군사고문단이 일하는 건물을 폭파한 사건에서 드러났듯 지금은 사우디 안에 반체제 기류가 거세지고 있는 시점이다. 왕족들의 사치와 유가 하락에 따른 재정 고갈, 실업 증가에 따른 청년층의 불만등을 배경으로 최근 수년 사이 슬슬 터지기 시작한 민주화 요구는 왕실의 권위와 통제력에 도전하고 있다. 사우디에는 아직 체제를 위협할 만큼 강력한 반정 세력이 없기 때문에 파드 국왕의 유고가 바로 체제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혼돈은 예상할 수 있다.
파드 국왕의 건강은 또한 세계 석유시장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사우디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4분의 1을 가진 최대의 산유국이자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가는 워낙 약세이고 산유량도 공급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우려가 덜하지만 장기적 전망에서 사우디의 정정과 유가 동향은 무관할 수 없다.
파드 국왕의 병세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이미 사우디 왕실의 30여 왕자들은 후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합, 일단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압달라 왕세자의 권한을 확대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드 국왕의 의붓 동생인 압달라는 친미 성향인 파드 국왕과 달리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어 그의 치세가 열릴 경우 사우디의 외교 정책과 내치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82년 즉위한 파드 국왕은 걸프전이후 형식적이나마 체제변혁을 시도했다. 전근대적 왕정을 쇄신하라는 지식인 집단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정 자문기관을 설치하는 한편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는 특히 미국의 중동 지역 이해를 대변, 그의 유고는 사우디를 축으로 하는 미국의 중동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어 더욱 주목된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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