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1월 25일자 1면에는 「5·18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역사적인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같은 신문 25면 「오늘의 사람들」란에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있는 능인선원(대표 지광스님)이 동양최대 규모의 불교복지시설인 능인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 기념법회를 가졌다는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5·18단죄의 대상인 전두환 노태우씨와 능인선원의 지광스님간에는 아무런 인과 연도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지광은 속명이 이정섭으로 80년 당시 한국일보사에 몸담고 있던 주니어 기자였다. 그는 계엄철폐와 신문검열 거부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 때문에 강제해직당했다. 80년 7월중순부터 11월께까지 신군부는 소위 언론인숙정과 언론사 강제통폐합 조치로 1,000여 언론인의 생업을 박탈했다.
언론대학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15년이 지난 오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5·18원죄속에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을 대물림했던 전·노씨는 영어의 나락으로 추락, 치욕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불가에서 말하는 전생, 금생, 내생으로 이어지는 삼생의 업보가 아니라, 15년만의 인과응보인 셈이다.
그들에게 내쫓김을 당했던 이기자는 수도정진을 통해 지광스님이 됐다.
그는 지금 7년 역사 끝에 문을 연 복지관에서 부처님의 자비행을 실천하고 중생구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지광스님은 『이웃이 없는 자비는 없고 자비가 곧 사회복지인 만큼 자비와 깨달음의 사회화를 위해 능인선원이 앞장서겠다』고 말한다. 「생활불교」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실제로 능인종합사회복지관은 탁아소 유치원 청소년독서실 부녀자직업훈련원 교양문화센터 결혼식장 노인학교 노인병원 장례예식장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곳은 언론인의 기개를 짓밟혔던 지광이 자신의 꿈을 다시 일궈나가는 「텃밭」이다. 지광이 먼 훗날 전씨와 노씨를 불당에서라도 만난다면 어떤 내용의 설법을 들려줄지 궁금하다. 기막힌 인생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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