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가 노태우씨에 이어 3일 구속 수감됨으로써 우리는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감옥에 갇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직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이 동시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사례가 다른 나라에 또 있을까. 정말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분노와 아울러 수치심에 떨고 있다. 어쩌다가 나라꼴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지금 구석구석에서 한숨과 개탄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씨가 서울 구치소로 간지 얼마 안되어 전씨가 안양교도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본 국민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착잡하다.전씨를 둘러싼 최근 며칠간의 움직임을 보면 모든게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이다. 12·12와 5·18의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전씨를 소환한 것도 전격적이었다. 이에 대응해서 대국민성명이 나온 것도 뜻밖이었다. 즉각 사전영장을 발부받아 새벽에 구속을 집행한 것도 놀라웠다.
오랜만에 국민 앞에 나타난 전씨의 성명내용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야 하는 역사의 죄인이란 인상은 전혀 없었다. 12·12, 5·17, 5·18 등 자신이 주도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사죄나 사과는 커녕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었다.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그의 자세는 지금의 국민감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전씨가 발표한 성명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대목도 없지 않았다. 구국의 결단이라면서 3당이 한데 합쳤던 일, 5공 청산에 대한 1노3김간의 합의 등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명이 공분을 산 것은 그의 반성없는 반발자세 때문이다. 그의 태도는 역사와 국민 앞에 죄값을 치르겠다는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검찰이 도주 우려가 없는 전씨를 새벽에 멀리 고향집 침소까지 찾아가 연행하는 다소 무리한 감정적 대응을 했는데도 국민들이 수긍한 것은 그러한 잘못된 행동 때문이었다.
이제 전씨가 앞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12·12, 5·17, 5·18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다 밝히는 것이다. 변명이나 묵비권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검찰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말은 억지다. 고집과 오기를 버리고 떳떳하게 처신해 주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그 길만이 나라를 위한 최후의 봉사다. 그것만이 사죄하는 길이다. 국민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도 그것 뿐이다.
지금 국민들은 지난날의 군사 쿠데타를 응징하려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 갈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5·18 특별법 정국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일 처리가 선후가 뒤바뀌고 예측불허의 조치가 불쑥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만 해도 그렇다. 공소권 없음과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던 검찰이 하루 아침에 돌변해서 전격 구속 수사에 나서는 모양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왜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서둘러 대는지 국민들은 얼른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5·18의 단죄가 당연하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게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5·18 특별법을 만든다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법도 만들기 전에 전격 수사를 한다고 서두르니 어리둥절 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크고 어려운 일일수록 순서에 따라 순리적으로 풀어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국민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정치권의 무질서한 공방전이다. 여야 4개당이 저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문제에 대해 악을 쓰고 있으니 도저히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국민회의는 일요일인 3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대규모 옥외군중 집회까지 벌였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북한에서 쳐내려오는 것 아닌가」하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제 그 어지러운 말싸움은 그만 하고 차분히 협상 테이블에 앉아 특별법관계 내용 등을 검토할 단계가 되었다. 지금 정당들 간에는 「어느 당은 전씨의 대변역」이라느니, 「어느 당은 민자당의 2중대」라느니 하면서 이 문제를 두고 서로 헐뜯는 저질 쇼가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당국은 과거청산작업 과정에서 생긴 일들이 혹시나 나중에 과거청산 대상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빈틈없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전씨에 대한 심판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모든 절차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냉정해야 한다. 감정적이거나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정치위에 법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국민의 공감을 삼으로써 불안감을 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온나라를 혼돈속에 몰아넣고 있는 이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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