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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검찰발표 의존 탈피해야/이재경(나의 지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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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검찰발표 의존 탈피해야/이재경(나의 지면평)

입력
1995.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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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추측기사로 사건초점 흐려/철저한 사실확인 권위지 품위 지켜야신문기자는 국민의 눈이고 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취재와 보도의 제한이 거부된다. 모든 국민이 직접 국정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언론의 특별한 활동영역이 보호된다.

민주적 정치체제에서 언론의 역할은 이같은 논리적 토대위에 정의된다. 그래서 많은 신문이 개인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노태우씨 비자금 문제를 둘러싼 검찰관련 기사보도는 한국언론의 보도관행과 관련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노출시켰다. 첫째 기자들이 너무 지나치게 검찰의 발표에만 의존하는 경향이다. 이 점은 오래전부터 우리 언론의 문제로 지적돼온 것으로 발표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만들어 냈다. 이번 사건은 너무 철저하게 검찰의 정보통제에 언론의 보도가 따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이 언론의 취재방향과 보도내용까지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다. 뉴스 시간마다 TV화면에 나타나는 안강민중수부장의 권위있는 모습과 그를 에워싸고 그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바쁘게 적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은 이같은 검찰과 언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요약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언론이 아무래도 그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같은 문제는 상당부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경험의 폭과 깊이가 충분치 못한데서 비롯된다. 신문의 증면과 기구 확장 등으로 인해 데스크 인력이 부족한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룰 때는 과감히 중량급 인력을 직접 배치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문제는 노태우씨 비자금 소재에 대한 무책임한 추측기사와 노씨 주변 인물 및 재벌 총수들의 처벌관련 예단기사들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언론은 치밀한 법률적 검토보다는 국민감정의 흐름에 편승한 도덕적 재판관의 역할을 자임했고 출처를 밝히지 않는 제보의 기사화와 금융 전문가의 추정을 바탕으로 한 자금은닉시나리오 구성 등을 무절제하게 시도했다. 이같은 보도자세는 독자를 불필요하게 흥분시킨다. 또 사건 수사와 초점을 흐리게 하는 역기능도 우려된다.

최근에는 보도의 흐름이 5·18문제와 전두환씨의 사법처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기관은 헌법재판소다. 한국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5·18관련 단체들의 헌법소원 취하를 정략적 목적을 앞세운 무책임한 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번 사건은 우리 사법체제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뿌리 깊지 못하다는 측면을 부각시켜 줬다. 군인들이 법을 마음대로 재단하던 시대, 법조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원칙을 세우고 법질서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처럼 불신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같은 점에서 언론 또한 예외는 아니다. 12·12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언론의 모습은 부끄러운 점이 많았다. 정치적 격변기일수록 언론의 역할은 막중하다. 항상 다른 신문에 앞서 언론개혁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일보부터 선전성 보다는 철저한 사실확인을 추구하면서 국민의 시각을 중요시 하는 권위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이화여대교수·신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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