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비리사건으로 한동안 벌집 쑤셔놓은것 같았던 우리사회가 5·18주역에 대한 단죄 결정으로 또 한차례 소용돌이속에 휘말리고 있다.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이제 이 땅에 정의와 진실, 그리고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한다』며 5·18특별법제정을 지시했다. 지난 7월 『성공한 쿠데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않는다』고 검찰이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린지 4개월여만이다. 역사의 뒤편으로 묻힐 것같았던 5·18은 결국 통치권적 결단에 의해 사법적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노씨의 천문학적인 축재비리가 국내외로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시점에 터져나온 5·18단죄결정은 뒤늦게나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큰 공감을 얻고있다. 전환기의 혼란을 틈타 무력과 폭력을 휘두르며 역사와 민의를 배반하고 정의를 유린했던 주역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은 그들의 업보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다만 헌재의 5·18불기소 취소선고를 하루앞둔 지난달 29일 헌법소원을 제출한 당사자들이 돌연 소를 취하한 까닭에 「역사의 법정」이 무산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도 「5·18 불기소결정은 잘못」이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미 뇌물수수혐의로 영어의 몸이 된 노씨의 뒤를 이어 전두환전대통령의 사법처리도 시간문제인 것같다.
사실 김대통령은 집권이후 2년여동안 야당과 재야로부터 줄기차게 특별법제정 요구를 받아왔다. 그때마다 김대통령은 『5·18은 일부소수 정치군인들에 의한 쿠데타』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실정법적 해결보다는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호소해왔다.
김대통령의 결단이 왜 진작 나오지 않고 형법상 내란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된후에 나왔는가 하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여론이 적지 않은 것도 이때문이다. 아울러 정치권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의 의도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국민회의를 비롯한 야권일부는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라는 여권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 『국면전환용 승부수가 아니냐』는등의 의심을 버리지못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은 5·18문제의 해결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때문이 아니라 역사와 정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좀더 성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대통령의 전격적 지시가 결과적으로 검찰의 위상에 또 한차례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도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 것같다.
김대통령의 5·18단죄의지가 실천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우선 개헌추진 소동까지 낳았던 특별법제정을 둘러싼 위헌논란의 소지를 제거해야하고 전씨측을 포함한 신군부세력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며 예상되는 여권세력의 동요도 추스려야 한다.
야권의 특별검사제도입 요구공세도 만만치않다. 「공소권없음」결정을 내린 검찰에 5·18재수사를 맡길 수없다는 야권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따라서 특검제를 도입하지 않고도 5·18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 확실히 이해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김대통령과 검찰의 몫이다.
아울러 우리는 『죽은 과거가 산 미래를 잡아먹고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지적에도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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