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법과 질서를 잘 지키기로 손꼽히는 나라답게 독일 국민들은 대법원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기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헌재의 해석 하나하나가 국민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때 그때 법해석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겐 「헌법재판」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독일·오스트리아·스페인등과 같이 법률의 위헌 심사권외에 정당해산, 대통령등의 탄핵과 직권남용도 심사하는 우리 헌재의 발자취는 기구하다. 제헌헌법에선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며 법률심사권만 갖는 헌법위원회를 운영, 귀속재산법등 7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을 정간케 한 군정법령88호는 4·19로 해석하지 못했으며 2공때는 오늘과 같은 헌재를 헌법서 규정했으나 헌재법을 만든지 1개월만에 5·16쿠데타로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이어 3공때는 대법원이 법률심사권을 갖게 했고 유신과 5공때는 헌법위를 설치했으나 15년간 단 1건도 처리하지 않는 허수아비로 시종했다. ◆87년 가을 여야합의개헌으로 부활된 오늘의 헌재는 88년9월1일 출범이래 1기에 이어 2기까지 7년간 2천여건의 헌법소원을 접수, 1백여건의 위헌선고를 했다. 국회의원출마자의 기탁금, 국가보안법7조1·5항의 위헌과 국제그룹해체는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란 결정등은 역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 등 정치적 사안은 최대한 지연시켜 눈총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검찰의 5·18불기소에 대한 결정을 둘러싼 소동으로 헌재는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야권의 소원취하로 위상이 실추되기는 했지만 헌재가 법률의 최종해석권을 갖는 중요한 기관임이 알려지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럴수록 헌재는 정치적 상황에 눈치보지 말고 엄정한 법해석으로 권위를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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