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초겨울이 아닐까. 사무실 창밖의 나무들이 춘하추동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12월초 이맘때의 모습이 가장 그 나무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파릇파릇 새 잎이 돋는 봄나무, 신록이 눈부신 초여름 나무, 녹음이 울창한 여름 나무, 단풍이 불타는 가을 나무를 거쳐 이제 나무들은 잎을 거의 떨구고 수수한 모습으로 서있다. 한겨울 찬바람속에 서있는 나무들이 의연하게 보일때도 있지만, 가장 자연스럽게 생긴대로 서있는 나무는 역시 초겨울의 나무들이다. 용솟음치는 생명의 환희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삭여낸 깊은 부드러움이 초겨울 숲을 감싸고 있다.
사람들도 같다고 생각한다. 한창 기운이 왕성할때는 잘 안보이던 모습이 중년을 넘기면서 은근하게 드러날때가 있다. 아, 저사람이 저런 사람이었구나 라고 새삼 바라보기도 한다. 기운이 왕성할때는 자기자신의 울창한 녹음에 가려 그의 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뿐 아니라 남을 바라볼 여유도 없는데, 어떤 시기에 이르면 그런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자기도 바라보고 남들도 바라보는 여유, 그것이 늦가을 또는 초겨울의 축복이다.
그런 눈으로 주변사람들을 보면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장점과 단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오랜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요즘 새삼스럽게 그들을 발견한다.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그전에 깨닫지 못했다. 열심히, 착하게,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온 친구들은 믿음직스럽다.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밀려와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중심을 잡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갖게 된다.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직업인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온 그들은 이제 울창한 녹음에서 벗어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반장이었던 친구들은 아직도 반장 같다. 그들은 항상 점잖고, 모범적이다. 시집살이도 사회생활도 갑자기 덮친 불행도 모범생답게 의연하게 치러 낸다. 물론 반장이 아니었던 친구들도 훌륭하다. 그들은 헌신적이고, 부지런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재주가 튀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어머니처럼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사무실 창밖으로 초겨울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친구들을 생각한다.
『나는 초겨울 나무같은 너희들이 좋아』 라고 나는 혼자 말한다. 나이들수록 다른 사람의 훌륭한 점이 보이고, 그들이 부럽고, 때로는 열등감을 갖게 되지만, 그 열등감은 괴롭지 않고 따뜻해서 좋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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