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흑인 집단학살 관련자 전 국방 등 기소/데클레르크“정치보복땐 우익세력 반발” 사면주장흑백 정권교체에 성공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과거청산 문제를 놓고 흑백세력간에 정면대결위기로 치닫고 있다. 구백인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흑인집단학살 사건을 배후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마그누스 말란전국방장관의 사법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살얼음위를 걷고 있는 흑백공존체제에 심각한 균열을 몰고온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87년 흑인 13명이 학살된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말란전장관과 백인고위장교 10명이 지난 4일 무더기 기소되면서 비롯됐다.
이들은 흑인세력을 대표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견제하기 위해 ANC와 대립관계에 있던 줄루족 잉카타자유당(IFP)의 행동대원을 조종, ANC측 흑인양민들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있다.
사법당국의 포위망이 좁혀들자 말란전장관은 91년께 당시 백인정권의 최고위층이 잉카타자유당의 테러부대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언급, 정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의 말은 당시 대통령이자 현 흑인정권의 부통령인 데 클레르크가 넬슨 만델라현대통령이 이끄는 ANC를 음해할 목적으로 테러범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데 클레르크는 남아공의 흑백화합에 기여한 공로로 93년 만델라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바 있어 이번 사태는 그의 도덕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물론 데 클레르크는 테러부대에 비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과거 백인정권하의 사건에 대해 뒤늦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정치보복이라며 흑백화합 차원에서 말란의 기소를 반대하고 있다. 데 클레르크는 또한 자신의 집권시절 테러혐의를 받고 있는 ANC 조직원 117명을 사면했다면서 만일 말란이 기소될 경우 형평성 차원에서 작년 3월의 IFP 당원 살해사건 배후인물로 지목된 조에 모디세현국방장관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에 대해 만델라는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다. 데 클레르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일축하며 말란에 대한 사면을 거부했다.
감정섞인 두사람의 대결은 흑백대결구도로 비화했다. 백인보수세력의 대부격인 PW 보타전대통령은 만델라에게 말란의 사법처리가 강행될 경우 우익세력이 반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흑인정권의 연정파트너이자 데 클레르크가 당수로 있는 국민당에선 만델라를 「사기꾼 예술가」라고 부르며 만델라진영을 자극하고 있다. 말란 자신도 『내가 사법처리되면 대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남아공은 93년12월5일 이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혐의자가 죄를 뉘우치고 자진신고할 경우 사면위원회가 사면여부를 결정하는 「진실·화해」법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말란은 결백을 주장하며 사면위원회 출두를 거부하고 있다. 말란의 기소문제를 둘러싼 남아공의 흑백대결은 과거청산이 얼마나 험하고 힘든 작업인지를 새삼 상기시켜 주고 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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