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길 전문교·안종훈 전 군수사령관/각의·군지휘관 회의서 계엄확대 반대「5·18」의 시작은 「5·17」이었다. 신군부는 80년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 전국계엄확대를 결의했고 이날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를 통과시킴으로써 사실상 전권을 장악했다.
이날 두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말없이 신군부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지조를 꺾지 않은 단 두사람이 있었다. 안종훈 당시 군수사령관과 김옥길 문교부장관은 이날의 두 회의에서 각각 유일하게 신군부의 「거수기」역을 거부했다.
5월17일 상오 11시. 주영복 국방부장관 주재로 국방부 회의실에서 열린 위압적 분위기의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안사령관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지금은 군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다. 군이 나서려면 정부나 국회의 요청이 있어야 하며 국민합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병 3기로 군에 들어와 12사단장·육군대학 총장등을 역임한그는 80년 8월 보직에서 해임된 후 81년 1월 중장으로 예편됐다. 신군부측의 공직 제의가 있었지만 뿌리치고 서울 서초동 집에서 연금으로 생활해 왔다. 93년 7월 전두환씨등 12·12 주모자들을 반란죄로 고소했던 그는 5·18특별법 제정 소식에 『총칼로 정권을 빼앗은 쿠데타 주범들의 반란행위에 대해 준엄한 법적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김옥길 문교부장관은 같은날 밤 무장군인들이 배치된 살벌한 분위기의 중앙청 비상국무회의에서 『학생들이 시위중단을 결의해 내일부터 대학가가 평온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는데 계엄을 확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찬반토론은 이어지지 않았고, 8분만에 안건이 의결됐다. 이화여대 총장에서 물러난지 3개월만인 12·12사태 직후 문교장관에 발탁됐다가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밝혔던 그는 이날이 마지막 국무위원 자격이었다. 그는 90년 8월 숙환으로 별세했다.<고재학 기자>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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