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대선패배 불구 개헌통해 자신·군부 안전판 마련 아직도 「성역」으로… 정경유착 등도 과거청산 걸림돌지난 90년 민간정부가 출범하기까지 17년간 잔인한 독재자로 군림했던 칠레의 군부 실력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80회 생일을 맞은 지난 25일 수도 산티아고는 축하 파티와 이에 반발하는 규탄시위로 시끄러웠다.
2,000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축하연이 벌어지고 군악대가 그의 집 앞에서 축하 음악을 연주했다.
수도 경비대장은 생일 선물로 「끝없는 충성」을 다짐했다. 군정 희생자 유족들은 『시신들은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다』며 시위를 벌였지만 물대포까지 동원한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피노체트의 건재를 증명하는 이날의 풍경은 곧 칠레에서 과거 청산의 어려움과 현 민간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사실 피노체트는 민간정부의 통제권 밖 인물이며 지금도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73년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89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 90년 정권을 파트리치오 아일윈 정부에 넘겼지만 정권 이양을 몇 주 앞두고 헌법을 고쳐 자신과 군부의 안전을 보장했다. 자신이 줄곧 겸직해온 군 총사령관의 임기를 98년 3월까지 보장하는 한편 후임자도 자신이 추천한 5명 가운데 한 명을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했다.
상하원 총 158명의 의원중 20%는 군 총사령관 곧 자신이 임명하되 이들의 임기도 10년을 보장했다.
또 무기 구입 및 판매를 대통령의 재가없이 할 수 있게 만들고 국방예산은 삭감할 수 없게 했다.
이 개헌은 공무원 임기 보장과 면직·인사이동 금지, 국영 TV 임원 경질 금지 등도 규정해 군정의 손발이나 나팔수로 충성을 다한 추종자들까지 보호하고 있다.
피노체트의 건재는 민간정부의 발목을 묶어버린 이러한 「방패막이법」 외에도 11개 재벌이 GNP의 50%를 차지하는 정경유착 구조, 정확히 말해 「누이좋고 매부좋은 사이」로 지내 온 군부와 재벌의 밀월및 오랜 군정으로 형성된 강력한 기득권층의 존재 등이 과거 청산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 출범한 아일윈 대통령의 초대 민간정부는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 군정의 인권유린 사례 조사에 착수했지만 군부의 반발로 처벌은 커녕 진상규명조차 충분히 하지 못했다.
2대 민간정부를 이끌고 있는 에두아르도 프레이 현 대통령은 군정 희생자들의 유해가 잇따라 발견되고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헌법을 다시 고쳐 정의를 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의 20%를 장악한 피노체트파의 저항과 국가 전체에 뿌리내린 군정 수혜자들의 반발을 물리치기란 매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피노체트는 99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군정은 끝났지만 그 유산은 여전하며 민주화는 아직 불안하기만 한 데 칠레의 불행이 있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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