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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법적 청산/김일수 고려대 교수·형법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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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법적 청산/김일수 고려대 교수·형법학(특별기고)

입력
199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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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는 김 대통령의 결단이기 이전에 건강한 정의감과 법감정을 지닌 민의의 승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고 싶다. 80년대의 정치적 암흑기를 지나 오늘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개혁과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시민들에게 가장 신선한 즐거움 두 가지를 꼽으라면, 6·29선언과 11·24조치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시민과 재야의 진실과 정의에의 요구가 높아도 집권여당이 현실을 외면하는한 역사의 발전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3당통합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문민정부가 광주문제의 진실규명과 사법처리에 대한 의지와 힘을 갖고 있는지 정말 의문거리였는데, 이번의 11·24조치로 과거에 대한 법적 청산과 역사 바로잡기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5·18특별법의 성격·내용·절차등이다. 5·18특별법은 결코 혁명적 입법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되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광주문제에 대한 정치적 청산과정은 거쳤지만 국민의 훼손된 정의감과 법감정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역사 바로잡기와 새로운 사회통합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반인도적인 살상범죄를 저지른 신군부쿠데타 관련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무엇이 법인지를 새롭게 천명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5·18의 법적 청산은 철두철미한 진실규명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검찰은 12·12와 5·18에 대한 방대한 조사자료를 내놓았지만 진실 위에 정의를 세우려는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아직도 감추어진 진실의 소지는 많이 남아있다. 특별법은 수사의 철저를 기하도록 하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고려하여 이 역사적인 사안에 한하여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고려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특별법은 법치주의의 원칙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광주사건에 관해 새로운 범죄를 창설하고 새로운 중형규정을 마련하여 적용한다면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과 정면충돌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종료하지 않은 공소시효를 사후적으로 연장하는 것은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공소시효는 새로운 죄형의 창설이 아니라 기존의 죄형에 대한 형사소추의 시간적 제한일 뿐이고, 그것은 범법자의 권리가 아니라 국가소추권 자제의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 때문에 공소시효에 대한 기대가 훼손되었다고 법치국가의 원리가 침해되지는 않는다.

내란죄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국헌문란등의 목적이 실현된 때부터이다. 이 시점은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시기로 볼 수도 있지만 넓게 잡아 체육관선거를 통한 전두환 전대통령의 취임시기로 잡더라도 법리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 밖에도 특별법은 광주사태로 형사처벌을 받은 당시의 피해자들에 대한 원상회복의 절차와 방법, 지금까지 검찰수사에서도 협조를 하지 않던 사건의 중요참고인들이 조사에서 협조해야 할 의무를 지우는 방안들도 모색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과정에서도 절차와 법치국가의 룰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김대통령이 이 나라에 정의와 진실, 법이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만으로 법치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다. 공교롭게도 법치주의는 법치주의의 룰 속에서만 꽃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는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인류의 법문화유산이다. 이같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법치주의는 그 자체에 내재적인 한계와 절차를 준수하는 신중성과 형평과 최소한도를 지향하는 겸손성이 깃들어 있다. 법치주의정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진실의 열매가 저 너머로 보이더라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담장을 짓밟고 넘어가야만 한다면 차라리 그 열매얻기를 포기한다」는 한계성을 중시할 것이다.

법치주의를 정치적 용병술이나 인기전략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법과 정의의 원칙은 정치적인 이해타산이나 여론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점에서 특별법 제정도 하기전에 전·노씨와 또 누구만 처벌하고 다른 관련자들은 제외할 것이라는 대통령과 민자당지도부의 발언은 위험하고도 유감스런 것이다.

특별법 제정은 국민여망과 민의의 승리라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법의 제정과 적용·집행은 권력분립과 법치국가의 기본원칙의 틀 안에서만 행하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3권이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에 좌지우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치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과거 정치체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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