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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형 사회」의 윤리(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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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형 사회」의 윤리(사설)

입력
199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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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당수의 우유제품에서 항균물질과 항생물질이 검출되어 우유업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비단 우유제품 뿐 아니라 요즘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불량식품 사태에 대해 일종의 노이로제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얼마전 일부 백화점들의 식품포장일자 조작사건만 해도 이른바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식품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시민건강을 볼모로 교묘한 눈가림을 통해 탈법적 돈벌이에 나서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사실 가공·유통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식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의약품에서 첨단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스스로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사용해야 되는 복잡한 제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현대산업사회에서 대부분의 제품들은 자연상태에서 채취된 그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단계의 가공 및 유통을 거쳐서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러한 가공 및 유통의 각 단계에 끼어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다. 최종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가공·유통의 각 단계가 정교해지고 단계의 수가 늘어날 수록 제품의 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게 되어 가공·유통업체의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현대인들은 일종의 「레몬형 사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컬로프(AKERLOF)라는 학자는 레몬과 복숭아의 예를 비교하며 상거래에서 인간적 신뢰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레몬은 복숭아와는 달리 거의 예외없이 껍질이 단단하고 윤택이 있어 과일의 내부 상태를 알기 어려우며 따라서 장기간의 신뢰관계가 형성된 상인으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현대산업사회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복숭아보다는 레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극도로 복잡한 가공·유통단계를 거쳐 과잉포장된 상태로 공급되는 상품들에 둘러싸인 소비자들은 상품의 질과 관련해 평소에 기업들을 신뢰하지 못하면 하루하루의 생활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식품 등과 관련하여 최근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불량제품 사건은 레몬형 사회에 필수적인 기업윤리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만큼 시민생활의 불안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부가가치는 진정한 의미의 가치라고 볼 수 없다. 이같은 점에서 기업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며 아울러 정부의 감시·감독기능 및 소비자들의 집단적 자기보호노력도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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