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경쟁사 악용도 겹쳐 수주타격/바이어들 회피·통상압력 빌미까지비자금파문이 한달이상 장기화하면서 국내기업들이 해외사업추진에 심각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그룹총수들의 연쇄소환과 전직대통령의 구속사실이 외신을 통해 낱낱이 소개되면서 국가 전체 이미지는 물론 기업의 대외신용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해외주재원들은 최근 경제성장으로 공들여 쌓아올린 성가가 한순간에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으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은 우선 비자금파문이 해외대형공사나 플랜트수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가시적인 피해사례는 없지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붕괴사고 당시의 곤욕으로 미루어 상당한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국내기업들은 올들어 각종 붕괴사고로 동남아지역에서 대규모 건설공사수주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면서 『특히 H그룹의 경우 외국경쟁사가 이를 물고 늘어져 결국 수주에 실패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비자금사태로 드러난 한국의 부패구조를 외국경쟁사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 주재하고 있는 국내상사 한 관계자도 『정치의 청렴도를 강조하는 싱가포르의 국민성으로 비춰볼 때 급증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건설수주는 주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투자와 신규바이어의 개척도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무공 일본무역관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대비용이 많이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재고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렇지 않아도 외국투자에 대한 제한이 많다며 대한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엄청난 악재』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존의 바이어들은 이미 정경유착이라는 한국의 관행에 익숙해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새로운 바이어들과의 계약은 아예 단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의 한 상사주재원도 『해외바이어들이 국내기업과 거래할 때에는 검은 돈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을 해와 이를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밝혔다.
이번 비자금사태는 또 미국등 선진국들이 통상압력에 나서는 빌미가 될 가능성도 크다. 무공의 한 관계자는 『수출되는 제품자체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최근 제기되고 있는 부패관행으로 인한 무역장벽문제에도 좋은 구실이 될 것』이라며 『시장개방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판에 스스로 부패구조를 시인한 꼴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미지추락과 맞물려 총수들의 운신 폭이 좁아짐에 따라 당분간 해외투자사업은 사실상 중단되지 않겠느냐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D그룹의 한관계자는 『비자금 연루기업의 경우 대부분 해외에서 사태의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운채 일손을 놓고있는 상태』라며 『대외적인 요인도 문제지만 총수의 움직임이 위축되고 주재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기업내부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이재열 기자>이재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