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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시인 김지하 「동북아문화의 미래」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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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시인 김지하 「동북아문화의 미래」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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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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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서 「인류보편의 사상」 찾자”/“문화의 힘이 세계 이끄는 시대” 우리민족 큰 가능성/이­민중을 삶의 주인공 만들기 위한 동북아 새 사상 연구해야/김­동학은 한민족 힘차게 뻗어나고 통일 성취위한 생명사상최근 23년만에 고국을 찾아온 재일동포작가 이회성(60)씨와 시인 김지하(54)씨가 처음 만났다. 그동안 간접적으로 서로를 잘 알고 있던 두 사람은 서울 대학로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에서 만나 동북아문화의 미래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아쿠다가와(개천)상 수상작가인 이씨는 66년 조총련 탈퇴이후 남북 어느 쪽에도 귀속하지 않는 「조선」이라는 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1일 세번째 방한, 한림대가 주최한 한일 심포지엄에 참석한뒤 여러 문학인들을 만나보고 돌아갔다. 이 대담은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발행하는 계간「대화」 96년 봄호에 전문이 소개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김지하=안녕하십니까. 제가 이선생의 작품을 읽은 것이 「다듬이질하는 여인」인데 그 소설이 아쿠다가와상 수상작이지요? 작품이 잔잔하게 개울물이 흘러가는 느낌이어서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회성=그렇습니다. 72년에 한국에 왔을 때 김선생은 마산에서 요양중이셨지요. 저는 70년에도 잠깐 방한한 적이 있었는데 72년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얼마되지 않은 73년에 김대중 납치사건, 74년에 민청학련사건이 났지요. 그래서 부랴부랴 움직여 도쿄 긴자(동경 은좌)에 있는 다리에서 재일한국인,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랑)씨등과 함께 단식농성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김=감옥에서 변호사를 통해 소식을 듣고 매우 고마웠습니다. 민족의 동질성은 물론 세계 지식인들이 거미줄처럼 교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출옥후 일본에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시절이 수상한데다 외국에 나가면 무엇하나 하는 오기, 게으르고 겁많은 성품 탓에 여태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김지하가 언제 일본에 오느냐는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이 땅 황토의 민중과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깊은 정신이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김=외국에 나갈 수 있으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국제감각도 익히고 세계시민으로서 지식인들끼리 교류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저는 어디든 가고 싶지만 계기가 안 닿았을 뿐이지 국수주의나 핏줄기 제일주의에 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저도 국수주의는 우리 민족이 아시와와 세계에서 이루어낼 역할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김=내일 모레면 한국은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가 됩니다. 우리나라가 경제는 부쩍 발전해갑니다만 정신적이고 전인류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유럽의 인종주의는 질타하면서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옌볜동포들을 구박하는 것을 보면 나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민족성이 그런 것은 아니고 일제시대와 분단, 전쟁, 개발독재를 지나면서 정신적인 교양이나 내면화과정을 근대화와 동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에 편협한 민족주의까지 가세하면 꼴불견입니다. 이런 민족주의가 극우보수파와 결탁하면 위험해집니다. 우리의 문화와 사상에서 보편적인 인류적 자산을 끌어올려야지 일본 우익국수주의자들같은 낡아빠진 민족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자멸하는 길입니다.

▲이=8월에 연해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의 기업인들이 투자·지원하겠다는 말만 떠벌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해외한민족과 더불어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남북의 권력이나 조직에 휩쓸리지 않고 민족으로서의 정기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민중이 해방되고 민중으로부터 나온 정권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상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가가 절실한 문제입니다.

▲김=감옥에서 저는 생명사상을 깨닫고, 동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유불선이나 기독교, 마르크시즘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면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상의 씨앗을 저는 동학에서 발견했습니다. 동학은 생명사상, 풍류, 화백사상들을 근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 속에는 네오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우주적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지난해 냈던 「백년동안의 나그네」를 쓰면서 우리가 진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남북으로 다른 체제가 들어서고 난 뒤 권력에 눌려 우리 민중은 많은 한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해방후의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룬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문화적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우리가 문화적으로 어떤 이치와 감성을 가지고 살 것인가는 해외동포들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문화적 능력이 세계를 이끌고 인간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형편이 돼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태계·환경위기, 가족의 해체, 도구화로 인한 인간의 주체성 상실, 폭력, 마약등의 절망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 동북아시아 전통사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남북통일도 이것과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화의 척도가 동학이며 동학에 대한 집중조명이 지금에야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그것을 어떻게 구체화해 나가느냐가 문제로 제기되겠군요.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무너졌고 세계를 보는 큰 패러다임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일본만 하더라도 일본문학사를 원혼의 학설로 재조명해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만엽집의 이면에는 사람들의 한이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한 예입니다. 아시아지역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동아시아문화를 나라끼리 공유해야 한다는 큰 과제를 앞두고 문학교류나 비교문학연구도 중요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동학이라는 근원적인 사상이 있듯 일본이나 중국에도 그런 사유가 있을 것입니다. 문화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넘어서기 위해 서로 활발히 교류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같으면서도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것이 많고, 일본사람들도 우리나라를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보거나 우리 문화를 중국의 영향 아래서만 보는 좁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동북아시아에서 그런 문제는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의 원천적 사죄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한일간의 초국가적 시민연대가 필요합니다. 양심적인 일본지식인들이 올바른 주장을 펴다가도 보수파지식인들의 위세에 눌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일본은 시민적 발언이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오에 겐자부로의 초기작품 중에 「정치선언이 죽었다」는 소설이 있습니다. 천황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전후민주주의를 옹호한 이 작품은 지금 나와 있는 오에의 전집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우익의 협박 때문이지요.

▲김=일본이 망언을 했다가 취소하는 의도된 행동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시 찾아보려는 기회를 노리는 것같습니다. 일본사회가 자신들의 죄과를 은폐하면 할수록 일본시민들이 동아시아나 세계 속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고, 한일간의 민간수준 교류도 힘들어진다고 봅니다. 일본시민이나 지식인들이 일본 우익의 재등장에 대응하는 반란급의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저는 일본사람 속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씁니다. 일본말은 공부하면 할수록 마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말들을 어떻게 확보해나가야 하는가로 늘 고민합니다. 저는 김치냄새 나는 문장을 쓰고 싶은데 단무지냄새가 어느새 스며들어 옵니다.

▲김=민족이란 건 일정하게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다층적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개인, 지역, 민족, 세계등 여러 층의 문화가 혼합돼 있습니다. 복잡한 층위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선생이 한국적 감수성을 가지고 일본말로 소설을 쓰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 있겠죠. 기계적인 것에서 생명의 패러다임으로 사상의 기류가 바뀌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인류의 삶을 재평가해야 할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이 흘러가고 같이 생동하는 자세로 사물을 본다면 자연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 다층적인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전환의 가능성이 동학에 있다고 봅니다. 각지불이라는 동학의 주문은 인간이 세계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는 소리입니다. 민족과 세계와 우주의 관계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역사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을 생각해 볼 때 지식인도 민중운동 속에서 고민하며 자신의 책임을 깨닫고 잘못한 경우는 겸연히 고백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문제는 이기주의입니다. 근대로 향한 사회교체기에 군현제도가 무너지면서 개별화로 향한 해체가 진행됐습니다. 일본은 그런 해체에 대항해 메이지(명치)유신을 했고, 중국은 태평천국의 전쟁이라는 혁명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대안은 동학이었습니다. 각자가 자기 안에 분할할 수 없는 전체 우주를 모신 거룩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동학의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이기주의와 개별화가 극에 달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동학의 대답은 「자기가 누군가를 발견하라」는 것이지요. 자기 안에 이웃도 있고, 풀, 냇물, 산등 모든 자연, 우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 개화파를 보는 문제, 동학의 사상에 대해 길게 이야기 나누었다)

▲이=동학의 근원적이고 방대한 사상을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도록 구체화시키는 것이 과제로 제기되겠군요.

▲김=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출발하여 동학연구의 붐을 일으켜야 합니다. 물론 동학이 중요하다고 그것만이 제일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동학에 대한 관심과 운동은 동·서양의 대사상들이 해체되는 시기에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그만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민중을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동북아 여러나라의 사상과 문화 속에 내재하는 새로운 사상을 더욱 계발, 연구해야겠습니다.<정리=김범수 기자>

◇김지하씨 약력

▲41년 목포출생, 본명 영일

▲66년 서울대 미학과 졸

▲69년 「서울길」등 시로 등단

▲70년 담시 「오적」 발표, 반공법위반 투옥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

▲80년 석방, 84년 사면복권

▲저서=「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중심의 괴로움」등 시집과 「살림」 「동학이야기」 「틈」 「님」등 산문집 다수

◇이회성씨 약력

▲35년 사할린 출생

▲60년 와세다대 러시아문학과 졸

▲69년 군상지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72년 아쿠다가와상 수상

▲82년 사할린 취재여행기 「사할린여행」발간

▲92년 군상지에 「유역」 발표

▲94년 「백년동안의 나그네」로 노마문학상 수상, 일본평론가 10인에 의해 94년 최고소설로 선정

▲현재 도쿄도 삼응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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