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개혁」 깃발 공산계 잇단 재기/파·헝가리·불가리아·구소공등 정권탈환 속출/민주화불구 급진경제 좌절감 바탕 도약「점진 개혁」의 새옷을 갈아입은 공산당이 동구를 재장악하고 있다.
20일 폴란드에서 공산당집권시 각료를 역임한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가 「동구 민주화의 기수」 레흐 바웬사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구공산세력 복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의 소련 공산당 서기장 취임으로 동구의 민주화 운동이 촉발된 지 10년만에, 89년 「민주혁명 도미노」로 동구 각국의 공산당이 일거에 권좌에서 물러난지 6년만에 반공산 자유운동의 본거지에서 구공산세력이 정권을 완전 장악한 것이다.
구공산세력의 복귀는 이미 지난 92년부터 시작됐다. 발트 3국에 속한 소국 리투아니아에서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노동당이 그해 11월 급진적인 시장경제 개혁으로 생활고에 직면한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총선에서 승리, 재집권했다.
이후 93년 9월 폴란드에서 민주좌파동맹이 총선에서 승리, 의회를 장악했고 94년 5월엔 비교적 모범적으로 경제개혁을 하고 있다고 평가되던 헝가리에서 구공산세력인 사회당이 총선 승리를 통해 권좌에 복귀했다. 94년 12월에는 불가리아 국민들도 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당에 표를 몰아줬다. 이외에도 아르메니아등 구소련 15개 공화국중 절반이상 국가에서 공산당 후신들이 정권을 다시 잡았다.
또 올해말 총선, 내년초 대선이 실시될 러시아에서도 구공산세력이 약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89년 질풍노도와 같은 기세로 공산정권을 무너뜨렸던 동구권 민중들이 왜 10년도 채 못 돼 개혁정당들을 몰아내고 있는가.
1년전 불가리아 사회당이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총선에서 압승한 것은 이와 관련,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공산주의 몰락뒤 대부분의 동구권 국민들은 급진적인 시장경제 도입으로 높은 인플레와 실업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등 복지혜택의 축소로 공산정권 시절 보다 어려운 생활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야기한 경제적 고통이 민중들이 개혁정당들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다.
구공산세력의 순발력있는 변신도 주효했다. 이들은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대세라는 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파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공박하면서 『우리는 납득할 수 있는 비용으로 시장경제로 이행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구공산세력들은 또 정강정책속에서 자신들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공산주의로 회귀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면 좌파의 득세는 계속될 것인가. 분석가들은 최근의 구공산세력 재집권 신드롬은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시적인 좌절감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며 국민들의 지지를 계속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이 고통없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우파의 정권탈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동구권 민중들의 좌파 선택을 좌파의 승리, 우파의 패배로 단순 도식화 할 수는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동구 정치권이 감당하기 힘든 역사의 도전이며 이러한 점에서 좌파는 또 한번 역사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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