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하룻저녁에도 여러 곳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의 연주도 많지만 아무래도 경력이 짧은 신인들의 연주가 숫자적으로 더 많다. 그 많은 젊은 신인들 중에서 특히 재능이 있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연주자를 「차세대」연주자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런데 무심코 자주 쓰는 이 「차세대」라는 말을 음미해 보면 한국적 현실이 반영된 것처럼 느껴져 씁쓸할 때가 있다.
활약이 기대되는 것은 현재의 연주가 뛰어난 까닭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대이지 그 사람이 앞으로 꼭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연주는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신인」이라거나 「유망주」라는 말과는 달리 「차세대」라는 말에는 어딘가 다음 세대에 자리를 「예약」해 놓은 것같은, 시간이 흐르면 주도권을 잡을 사람들이라는 뉘앙스가 짙다. 요즘 정치판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면 「물갈이」할 사람들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같다.
연주에도 과연 「세대교체」라는 것이 있는가. 가령 베토벤을 연주하는데 「30대의 해석」 「40대의 해석」같은 것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30이 갓 넘어 이제 익기 시작할 나이에 「정상급」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고 나이가 조금만 어려도 천재가 나왔다고 떠들썩한 것도 이같은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반면에 한 연주자의 연륜이 쌓여가는데 따라 깊이가 더해가는 연주는 그리 자주 듣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깨달음과 지혜로움」을 음악에 담는 「노인」의 연주가 우리나라에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연주자에게 연주보다 더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는가. 만약 연주자간에 세대교체가 있다면 이는 연주 외의 것으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차세대연주자라는 말은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 별로 반가운 말이 될 수가 없다.
「차세대연주자」가 길지도 않은 세월이 흘러 「정상급」 연주자가 되고 나서는 진정한 연주는 뒷전으로 해버리는 경우도 더러 본다. 객석에 전달하는 것을 잃어버린 연주자는 목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간혹 『젊은이들에게 무대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말을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황송하게 느낄지는 모르지만 프로정신은 결여되어 있는 말이다.
소위 세대교체처럼 무대에 오른 사람들끼리 무대를 서로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으로 아직도 생각한다면 꿈 깨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무대에 살아 남느냐 하는 경쟁속에서 연주자를 살리고 안 살리는 것은 관객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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