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민주화의 기수」였던 바웬사가 무너졌다. 도대체 무엇때문인가.『바웬사는 구체제를 파괴하는 용기와 능력은 지니고 있었지만 국가를 재건할 자질과 역량은 없었다』 그의 동지였던 가제타 비보르차지 편집장 미치니크가 제시한 「해답」이다. 90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바웬사는 의회를 3번 해산했고 내각을 5번 교체했으며 총리를 6명이나 갈아치웠다. 그러나 물가고와 실업률은 해소될 줄 몰랐다. 확실히 그의 국정운영능력은 낙제점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를 능력부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지난 80년 레닌조선소의 전기공 레흐 바웬사가 공산정권에 맞서 파업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그는 분명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었다. 그러나 15년뒤 그는 지리멸렬한 공산당을 기사회생시킨 새로운 「다윗」앞에 영락없는 「골리앗」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공산체제에 대한 불굴의 투쟁을 가능케 했던 바웬사의 전투적인 비타협성과 자기확신은 어느새 오만과 아집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급진 개혁론이 관철되지 않을 때마다 그는 의회와 벼랑끝 싸움을 벌였고 의견이 갈리는 동지들을 설득해보지도 않고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독선과 권위주의, 지나친 권력욕이 자초한 난정에 노벨평화상이라는 월계관도 방패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웃나라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존재는 바웬사의 낙선이 개혁의 좌절이 아니라 바웬사의 패배임을 시사한다. 하벨 대통령 역시 공산체제에 저항한 재야투사였지만 집권후 국민적 화합을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 체코를 동구 민주화의 모델국가로 만들었다. 하벨이 지난 90∼92년 대통령 재임중 자신의 정당을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그가 사적인 권력에 얼마나 초연했던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바웬사와 하벨, 같은 길을 걸었던 두 민주투사의 상반된 오늘의 현실은 개혁의 성공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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