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18개 회원국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천차만별이다. 역사와 문화 종교적 배경이 제각각 다르고 경제력의 차이도 엄청나다.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까지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이 바로 APEC의 실체다. 하나의 공동목표를 지향해 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어설프고 느슨한 인상을 준다.그러나 19일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오사카선언을 보면 그런 선입감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번으로 세번째 모인 각국 정상들은 역내 무역투자의 자유화와 원활화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97년 1월부터 전면 이행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APEC의 비전과 원칙을 논의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번 오사카 정상회의를 계기로 구체적 실천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날 오사카선언에서 밝힌 행동지침은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 투자」를 달성하는데 따르는 모든 장애요소를 다룬다는 포괄성의 원칙을 비롯 9개항을 내세웠고 각국의 자유화추진 행동계획을 96년 필리핀회의때 제출하도록 했다. 매년 각국의 자유화계획을 이행 점검 개선 수정토록 자유화 일정을 제시한 것은 실질적인 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사카선언에 나타난 행동계획의 용어와 표현이 애매모호하고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되어 있어 APEC의 장래가 아직도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는 관측도 있다. 앞으로 행동계획의 해석을 두고 마찰이 생길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평소 대화와 협상을 통해 검토 조정하는 외교적 노력이 회원국들간에 계속된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통해 다른 나라들보다 앞장서 자유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중국의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은 내년부터 수입관세를 30%나 인하하겠다고 밝혔고 일본은 6백97개 품목의 관세인하를 조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높은 호응도를 보인 것은 APEC의 미래를 밝게하는 조짐이다.
특히 김대통령의 연설은 작년 정상회의후 선언했던 세계화추진정책의 연속선상에서 국가경쟁력 제고와 아울러 APEC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다짐한 것이다. 또 다양성을 강조한 대목에서는 회원국간의 이해관계에 한국이 조정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농업개방을 피하려는 한국입장이 반영된 것은 우리의 외교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국가의 이익이 언제까지나 예외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예상아래 대내외적인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뒤탈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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