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회는 정쟁에 여념없는 정치권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준 현장이었다. 1막은 4분발언공방에서 펼쳐졌다. 민자당과 국민회의 의원들이 온갖 유언비어와 저속어를 총동원, 상대당과 총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말그대로 진흙탕속의 싸움을 벌였다.대선자금 연계의혹과 20억원수수시인으로 노태우씨 축재비리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 자기보호를 위해 동원한 무기는 저질발언 인신공격 삿대질 고함 욕설뿐이었다. 물론 자성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양김의 「돌격대」를 자처하는 몇몇의원들은 회의장밖 복도에서까지 부딪쳐 뒷골목에서나 봄직한 패싸움직전의 상황까지 연출했다.
15명의 의원이 4분발언대에 섰지만 발언시간을 지킨 의원은 단 두명에 불과했다. 의장의 퇴장요구에 아랑곳없이 발언대를 떠나지않는 의원들을 놓고 한쪽에서는 『잘한다』『계속해』가, 다른 쪽에서는 『시끄러』『꺼져』가 터져나오는 상황이 두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그러나 더욱 어이없는 상황은 법안처리라는 2막에서 일어났다. 황낙주 의장이 하오4시15분께 겨우 표결을 선포하긴 했으나 의원들이 대거 이석,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것이다. 결국 법안심의도중 의결정족수미달로 회의가 공전하는 해프닝이 3번이나 되풀이됐다. 심지어 수표법개정안등 일부 법안은 표결확인도중 뒤늦게 의결정족수미달이 발견돼 표결자체가 무효화하는 사상초유의 촌극도 일어났다.
공전때마다 황의장이 한 말은 국회의 자화상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법안심의도 안하려면 의원을 그만두라』『해도해도 너무한다, 국민보기 부끄럽다』…. 우여곡절속 27개 법안처리에 걸린 시간은 30분남짓. 길고 격렬했던 정쟁에 비해 법안처리는 너무 짧고 형식적이었다. 국민도 이를 알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