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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비울 때인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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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비울 때인가(사설)

입력
1995.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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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으려면 국회의원직을 그만 두라』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회의에 참석, 국정을 심의하고 표결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다』 『정국이 불안할수록 국회의원은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권이 자숙하고 자괴해야 한다』내년 총선과 노태우비자금 사건으로 국회가 계속 파행으로 치닫자 황낙주 국회의장이 최근 의원들에게 당부한 어록이다. 오죽했으면 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의원들에게 「그만 두라」고 소리치면서 분개했을까.

회기 한달을 남겨둔 14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지금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출석의원이 적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아예 회의가 안된다고 야단들이다. 간신히 개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도중에 자리를 뜨는 의원이 많아 표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가 보니 예산안을 비롯한 각종 안건처리가 지연되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가 비틀거리는 이유는 의원들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표밭에 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이 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나라가 뒤숭숭할수록 국회를 지켜 국회가 할 일을 차분히 다해야 한다. 더구나 정치인들의 반성과 자숙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때가 아닌가.

전에도 늘 그랬던 것 아니냐고 넘어갈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무슨 수를 써야 할 때다. 국회의장과 각 위원장들이 회의에 참석 안하는 의원들의 명단을 밝히도록 국회법에 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불참하는 의원들은 사유서를 의장이나 위원장에게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의원들이 회의장을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국회가 꼴보기 싫다고 회의장을 떠나는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노태우 스캔들을 계기로 드러난 정치자금, 대선자금 수수설을 둘러싸고 정당간에 서로 물고 헐뜯는 추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분발언이라는 무대를 빌려 의원들은 자기당의 총재를 방어하고 남의 당 총재를 비방하는 충성경쟁의 대리전을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표현방식이나 구사하는 용어를 보면 도저히 의사당 안에서 쓰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저질의 원색발언들이 많다. 연단에 선 의원 뿐 아니라 앉아서 듣고 있던 의원들도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다. 여야 의석은 온통 삿대질과 고성과 맞고함 등으로 시장터보다 더 시끄럽고 어지러워진다. 이를 보다 못해 퇴장하는 의원도 있다. 노태우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국제망신을 당하고 있는데 국회까지 이래서야 되겠는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 기회로 삼아 법적 제도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 국회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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