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때 노태우씨에게 투표했던 사람들, 그가 대통령이 된후 잘 한다고 평가했던 사람들은 요즘 특히 씁쓸하다. 배신감, 창피함, 놀라움등이 뒤섞인 착잡한 심정으로 그들은 구속된 전직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흔히 유권자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잘 하라고 찍어줬던 후보가 당선된후 나쁜짓하는 것까지 무한책임을 질 수는 없다. 유권자들은 선거전에서 홍보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가짜 이미지, 근거없는 선입관, 분위기에 휩쓸린 감정적 판단으로 후보를 잘못 선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노태우씨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쿠데타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잠재우고, 민주화를 진전시켰다』 는 국내외의 평가를 받았는데, 지금 그 평가를 탓할 수는 없다. 그 시점에서 그 평가는 옳았고, 그가 뒤에서 업적을 능가하는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유권자는 항상 그런 위험을 경계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점에서 87년 노태우후보의 지지표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87년 대선의 의미는 매우 컸다. 대통령 직선제는 숱한 희생을 치르며 국민이 쟁취한 것이었고, 5공이 6월항쟁으로 사실상 무릎을 꿇은후 새시대가 기운차게 태동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의 지주였던 김영삼·김대중씨가 분열했고, 군사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선거의 대결구도는 초점을 잃었다. 민주화를 갈망하던 유권자들은 두 김씨 사이에서 방황했다.
노태우씨 지지표는 삼십여년간 뿌리내린 기득권 세력과 항상 여당 선거운동에 포섭되는 계층으로 형성됐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민주화를 주장하면서도 권력이동에 불안과 거부감을 느끼는 중산층과 고학력층 일부가 합세했다. 『삼십년간 야당생활하던 사람들이 집권하면 정신없이 먹느라고 나라 들어 먹는다』는 궤변으로 「이미 많이 먹은 사람들 쪽」 으로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으로 정치부패를 청산해야할 주체는 유권자들인데, 선거에서 이런식으로 후보를 선택한다면 청산도 개혁도 불가능할 것이다. 개인적 이해관계, 지역감정, 변화에 대한 불안과 저항감을 극복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선거혁명을 이루겠다는 소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87년 대선에서의 득표율은 노태우 36.7%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1%였는데, 노씨에게 투표했던 36.7%가 모두 반성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많이 먹은 사람이 덜 먹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깊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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