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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불행」 막으려면/이정복 서울대 교수·정치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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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불행」 막으려면/이정복 서울대 교수·정치학(특별기고)

입력
199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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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대통령이 수뢰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전직 국가원수의 구속이라는 한국정치사상 유례없던 국면을 맞이하여 정치학을 공부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바라는 바는 다음과 같다.첫째로 노 전대통령이 진실로 국민의 용서를 구하기를 바란다. 그는 지난달의 대국민사과성명과 첫번째 검찰수사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밝히기보다는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만 하고 엊그제의 검찰소환에서는 『여론이 원하는대로 맞추려 하다보면 나라가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스스로 격앙시키고 있다. 노전대통령과 법조인 출신 측근들이 법적대응과 그가 여야 정치인들에게 살포한 자금을 폭로하겠다는 위협으로 그자신에게 가해질 법적 제재를 최소화 할 수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오산이다.

노전대통령의 처리문제는 궁극적으로 본다면 검찰과 사법부도, 김영삼대통령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에 와 있다. 노 전대통령이 오랜만에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한 국가원수였다는 점을 감안해서 검찰과 사법부가 그에 대한 법적 처리를 관대히 하거나, 혹은 김대통령이 그에대한 사면을 고려하기에는 우리 국민의 분노가 너무나 크다. 특히 내년 총선과 내후년의 대선을 앞두고 현정권은 노 전대통령을 관대하게 처리할 정치적 여유도 없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대선자금을 포함해서 현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의혹을 아무 계산없이 밝히고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 보다도 더 엄한 벌을 받겠다는 자세를 나타냄으로써만 그 자신과 한때 그가 원수직을 맡고 있었던 국가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킬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노 전대통령의 재임기간에 그를 보좌했던 여권인사들은 말할것도 없고 야권인사들도 이번 비리사건에 대해 직접적인 법적 책임은 없다해도 정치적 혹은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당시 대통령이 기업가들로부터 준조세를 거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인사들은 왜 그러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야권인사들은 왜 그러한 비리를 문제삼지 않았는가?

대통령을 감독할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 입법부의 의원들은 왜 그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는가. 검찰과 사법부의 인사들은 법질서 수호자로서의 책무를 왜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는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다음의 제4부로 일컬어지는 언론계의 인사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어떠했는가. 이번 비리사건에 대해 우리사회 각분야의 지도층들은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재벌의 총수나 대기업가들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르나 돈을 갖다바친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에 노 전대통령과의 공동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셋째로 우리 국민도 각자의 지지후보 결정기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우리 국민중 상당수가 지역대결 의식에 기반해서 투표하고 있는데, 이것은 허위의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노 전대통령의 당선이 지역주의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투표성향을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민주시민의 의무가 투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새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선거로 선출한 공직자들에 대한 감시를 한시라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였지만 그의 재임기간에 이러한 시대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구속으로 보통사람들의 시대는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져있는 구국가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할 역사적 단계에 와 있다. 우리는 권력있는 사람, 돈많은 사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나라의 주인되는 국민국가 건설에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번 비리사건의 처리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권력있고 돈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식을 개혁하는 진정한 계기가 되어야만 할 것이고 정치권은 이러한 비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각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른 제도개혁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력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견제를 받지않는다면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민주정치의 가장 초보적인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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