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휘감은 16개 신봉 반만년 역사 지킴이로 우뚝백두산은 한민족을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이며 백두대간의 시작으로 한반도에 정기를 불어넣어준 요람이다. 환웅이 천상에서 내려와 신시를 만든 곳, 부여의 금와왕이 고구려시조인 동명성왕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만나고 발해 대조영이 건국의 기틀을 다진 곳이 태백산, 바로 백두산이다.
「우리 종성의 근본, 문화의 연원, 국토의 초석, 역사의 포태, 생명의 양분, 이상의 지주, 운명의 효모」.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을 그렇게 불렀다. 륙당은 한민족과 한족, 일본족을 포함하는 동방문화의 원류가 백두산에서 형성됐다는 불함문화론을 폈다.
한문화 원류를 찾아 1만리 장도에 오른 일행의 백두산근참길은 옌지(연길)에서 시작됐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버스에 오른 작가들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묘가 있는 용정과 발해의 서고성터가 자리잡은 화룡을 거쳐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이 위치한 안투(안도)현 마을 곳곳에는 「백두산에 오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덩샤오핑(등소평)의 말이 플래카드로 만들어져 걸려 있다. 낮 12시가 다 돼 창바이(장백)폭포가 보이는 두견별장에 여장을 풀고 천지등정을 서둘렀다. 천지와 출입통제소를 왕복하는 6인승 지프에 분승해 오를 때 작은 소동이 일었다. 천지체류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한다는 관리직원의 말 때문이었다. 현장스케치를 벼르고 있던 작가들은 『30분이면 사진도 찍을 수 없다』며 연장을 요청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차가 출발할 즈음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힘좋은 일제 도요타가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창 너머로 수천개의 멧부리가 성난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 위로 쌍무지개가 떠올라 황홀경을 연출했다. 목적지인 기상관측소옆 천문봉(2,741)까지는 20분거리. 차에서 내리니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의 세찬 바람이 분다. 억수같이 내리쏟는 비에 모래까지 뒤섞인 형세가 사납기 짝이 없다.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는 폭풍우에 빨려들어가고 다시 구름과 함께 솟구쳐 올라 혼돈스럽다. 1926년 백두산에 오른 륙당은 이 비를 「백두산어머니의 눈물의 채찍」이라며 기꺼이 맞았다고 한다. 조상대대로 이어살던 만주대륙을 중국에 내어주고 압록강 두만강이남으로 밀려내려간 좁은 나라마저 일제에 빼앗긴 죄책감에서 그랬을 것이다. 두동강난 조국에서 온 우리에게도 눈물의 채찍은 당연하리라. 숙연해진 마음으로 다음날 등정을 계획하며 하산했다.
새벽 5시에 눈을 뜨자마자 창바이폭포를 다녀온 뒤 천지에 올랐다. 두번씩 찾아온 못난 후손들이 안쓰러웠던지 백두산 천제(천제)는 안개와 바람의 깊은 휘장을 풀고 거룩한 몸을 그대로 드러냈다. 조선족 운전기사는 최근 1개월사이 가장 맑고 화창한 날씨라고 했다. 비스듬히 솟아오르다 수직절벽으로 떨어지고 칼날처럼 깎아지른 듯 하다가 살며시 내려앉는 품세가 동방지역의 조종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방에서 가끔씩 구름떼가 몰려오지만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 「하늘의 호반」을 지키는 16개의 신봉이 그 어떤 것의 범접도 막고 있는 듯 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지고 「우리의 소원」노래가 잇따른다. 동남쪽으로는 백두산 봉우리중 최상봉인 9,000여척의 장군봉이 우뚝하고 그 아래로 북한군초소가 보인다. 검푸른 수면 위에는 북한측에서 띄운 듯한 조각배 하나가 희미하게 움직인다. 시인 고은은 「백두산」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장군봉 망천후 사이 억겁 광풍이여/그 누구도 다스리지 못하는 광풍이여/조선만리 무궁한 자손이 이것이다/보아라 우렁찬 천지 열여섯 봉우리마다/내 목숨 찢어 걸고/욕된 오늘 싸워 이 땅의 푸르른 날 찾아오리라」.<최진환 기자>최진환>
◎불함문화론이란/“동방문화는 백두산서 비롯,한족이 그 중심”/일관학의 단군말살론에 맞선 육당의 학설
동방문화는 백두산에서 비롯됐으며 한족이 문화의 중심을 형성했다는 륙당 최남선의 학설. 일본 관학자들의 단군말살론, 일선동조론, 문화적 독창성 결여론등에 맞서 역사, 종교, 신화, 민속, 인류학등을 통해 고대문화의 원류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륙당은 동방문화의 원류를 「빠(Park)」사상으로 파악했다. 륙당에 의하면 백은 「빠」를 대신하는 고어로 신, 하늘, 해를 뜻한다. 또 빠의 가장 오랜 문자형이 「불함」이다. 동이족의 지명에 많이 나오는 백산은 태양신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지칭하며 태백산은 그 중심이 된다. 백(불함)을 숭상하는 모든 문화권이 불함문화권이며 조선은 중심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태백산 소백산 등 한반도 각지에 백자 들어간 산이 유달리 많은 점을 들고 있다. 륙당은 한반도 주변지역의 지명을 분석, 서로 흑해에서 동으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는 지역을 불함문화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륙당의 주장은 사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관념적 문화주의에 머물러 민족적 역량에 대해 회의를 갖게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작가 메모/김재학씨
1박2일의 백두산 일정동안 천지에 세 번 올랐다. 첫 등정에서는 거센 비바람과 안개로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다음날엔 날씨가 쾌청해 구석구석을 상세히 살필 수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무도 없는 천지봉우리에 올라 작품을 구상했다. 지프운전사의 재촉에 서둘러 내려왔다가 다시 웃돈을 주고 지프를 불렀다. 짙푸른 심연의 호수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열여섯 봉우리의 절묘한 형상에 초점을 맞추어 스케치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꼿꼿하게 서 있는 백두산의 위용을 맑은 하늘에 대비시켜 표현하고자 했다.
□약력
▲52년 마산출생
▲개인전 5회
▲한국수채화공모전 대상수상
▲한국수채화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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