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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영욕의 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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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영욕의 63년

입력
199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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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시절­육사입학­12·12주도­13대 대통령­구속수감…「태우」라는 이름처럼 그는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거쳐 군인으로 입신양명해 일국의 대통령자리까지 거머쥐었던, 63년에 걸친 영욕의 세월은 이제 물거품으로 끝을 맺었다.

남은 것은 「피의자 노태우」라는 수치스런 오명과 「전직대통령 구속 제1호」라는 불명예스런 낙인뿐이다.

그는 1932년 음력 12월4일 지금은 대구시에 편입된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리에서 태어났다. 7세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뒤 삼촌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4년제인 대구공업중학 4학년때 경북고에 편입)를 거쳐 51년 육사에 입학(11기)하면서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의 인생항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김복동 자민련부총재등 11기 동기생들과의 「운명적 만남」 때문이다.

「하나회」멤버였던 그는 9사단장등 핵심요직을 두루 거치며 군인으로서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는 전씨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9사단장 시절인 79년 그는 전씨와 12·12를 주도하며 전방의 예하 병력을 서울로 끌고 들어오는등 1등공신 역할을 했다.

노씨는 5공출범 직후인 81년7월 보안사령관(육군대장)에서 예편한뒤 정무 2·체육·내무장관, 서울 올림픽조직위원장등 요직을 거쳤다. 85년 12대 국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곧바로 민정당대표위원을 거쳐 87년 전씨 후계자가 된뒤 6·29선언을 거쳐 13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는 취임직후인 88년 4·26총선에서 참패, 「여소야대」가 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야3당의 5공비리 청산요구에 직면, 친구이자 후견인이었던 전씨를 백담사로 「유배」보내고 친인척과 측근들을 무더기 사법처리하기까지 했다.

그는 90년 1월 「3당합당」을 통해 이같은 상황을 역전시켰으나 끝임없는 당내분에 시달리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93년2월 퇴임후에는 율곡사업 등 재임시 비리뿐 아니라 12·12와 5·18과 관련, 2차례 서면조사를 받는등 불안한 생활을 해오다 결국 거대한 부정축재의 실체가 드러나 구속되기에 이르렀다.<홍윤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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