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 노씨 조사태도에 불만/처리방향 등 외부지침없어 이례/재소환 하루만에 구속 예상못해지난달 19일 박계동(민주)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노태우씨 부정축재사건은 한달여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제1막의 대단원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권력의 무서움과 추잡함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정치사에 여러가지 의미를 던졌고 숱한 뒷얘기도 남겼다.
○…검찰수뇌부들은 이번 수사가 외부의 「바람」을 타지않고 독자적으로 진행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통상 주요 사건의 경우 장관이 수사경과등을 직접 챙기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언론에 보도되는 정도만 사후에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수뇌부들은 『대선자금문제등 중요 현안 처리방향에 대해 예전과 같은「언질」이 없어 오히려 곤혹스러웠다』고 실토,「독립」에 따른 고충도 있었음을 시인했다.
실제로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여부와 관련, 『수사의 일부분이며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가 『비자금조성규모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조사하겠다』는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노씨의 처신에 대해선 일반 국민들 못지않게 검찰도 실망했다. 노씨 축재비리사건을 담당한 수사팀은 특히 그의 대국민사과와 1차소환조사 태도에 불만의 표정이 역력했다. 검찰 관계자는 『차라리 비자금 조성 총액을 밝히지 않았더라면 수사가 한결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천억원이라고 명시한 탓에 자금출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계좌추적등의 방법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검찰은 과거 수사에서 「덮었던」부분을 과감히 들추어냈다는 점이 두드러졌다.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의 조사가 신통치 않자 수서사건을 다시 들추어 냈고, 잠적한 배종렬 전한양회장의 경우 지난 93년 근로기준법위반등 사건당시 받은 「청와대에 2백억원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계좌추적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막판에 터져나온 석유개발공사비리사건도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입찰비리를 수사할 때 일부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검찰주변에서는 『언제는 덮었다가 언제는 다시 꺼내는 모습은 검찰의 무원칙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씨측은 사법처리를 각오하긴 했으나 재소환한지 하루만에 전격 구속할 것으로는 미처 예상치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에서의 학술회의참석차 지난 14일 출국한 정해창 전청와대비서실장과 한영석 전민정수석이 귀국일자를 18일로 잡은 것도 2차소환시기를 내주초쯤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지난달 27일 대국민사과문 발표를 둘러싼 뒷얘기도 흥미롭다. 당초 노씨는 유엔방문중이던 김영삼 대통령이 귀국하기전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혀야한다는 여권의 요구와 측근들의 건의에 대해 『김대통령과 직접 만나본뒤 사과를 하든지 해명을 하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측근들이 『이러다간 다 죽는다』며 집중설득해 가까스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게됐다는 것이다.
또 노씨는 이수정 전청와대대변인에게 사과문안 작성을 부탁했으나 이전수석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연희동방문을 기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측근들조차 비자금액수에 놀라움을 감추지못했다는 점이다. 6공시절 청와대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그처럼 많은 돈을 모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잘못이 있다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배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재계는 노씨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낙관론적 전망이 계속 빗나가자 아주 허탈해 하고 있다. 재계는 지난 3일 긴급 경제계중진 회의를 열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할 때만 해도 기업인의 검찰소환은 최소화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감돌았으나 노씨 구속과 함께 몇몇의 그룹총수도 사법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아연 긴장된 분위기이다. 특히 노씨 사건을 계기로 격앙된 반재벌여론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이백만·장현규·정희경 기자>이백만·장현규·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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