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근절” 「정」보다는 「경」의 개혁에 초점/“법령정비냐 재벌소유구조 개혁이냐” 초미 관심/정부마련 「신경제 장기구상」에 미래상 담겨질듯정부가 정경유착방지를 위한 「반부패 프로그램」마련에 착수했다. 이홍구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의 큰 고리를 끊기 위한 근본적 개혁방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총리가 말한 개혁프로그램이 어떤 방향인지는 불분명하다. 아직 내각에 구체적 검토지시가 내려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고질적 부패구조에 대한 지탄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이야말로 오랜 정경유착 관행을 혁파할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는 정부내에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현재로선 정부의 정경유착 단절대책은 정보다는 경의 개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내각 차원에서 「정치개혁」을 운운할 수는 없는 입장이어서 정치부패척결은 청와대와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경제비리근절은 행정부로 각각 역할분담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정경유착 근절대책의 포괄범위다. 비리의 원인을 관행이나 제도탓으로 규정한다면 법령정비 및 행정력조정정도로 반부패 프로그램은 마무리될 수 있다. 현재 검토중인 방안으론 ▲가·차명거래고발에 한해 금융기관직원의 비밀보장의무완화 및 돈세탁방지 법제화등 금융실명제보완 ▲기업접대비 손비인정범위의 단계적 인하등 세제손질 ▲징세행정강화 및 투명화를 통한 기업탈세방지등이 있다. 또 장부조작을 통한 비자금조성을 막기 위해 변칙회계를 적발치못한 외부감사인을 중징계하고 해당기업도 증권관리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 철저한 회계감독을 받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정경유착의 발생원인을 보다 깊은 곳에서 찾으려 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사실 말이 정경유착이지 본질은 비자금사건에서도 드러났듯 통치권자와 재벌의 밀월관계다. 재벌개혁이 오랜 논란거리이긴 하나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한명의 오너가 수많은 소액주주들을 무시한채 계열사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기업자금을 빼돌릴 수 있는 국내재벌의 소유·경영구조 개혁없이 정경유착단절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총리가 위원장인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선 이와 관련, 오너의 독단경영방지를 위해 외부이사·사외감사제 도입과 기관투자자의 의결권강화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해당부처에선 그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또 공정거래법상 30대 대규모기업집단의 총액출자한도(현 자기자본의 25%)와 상호채무보증한도(자기자본의 200%)를 낮추자는 의견, 오너의 계열사임원 임명권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재벌행태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에도 불구, 민간기업의 소유·경영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할 경우 국가권력의 범위에 대한 논란과 재계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가 정경유착근절대책을 재벌소유구조의 문제로까지 끌고 갈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그러나 재정경제원 고위당국자는 『재벌구조의 미래상은 정부가 마련중인 「신경제 장기구상」에 담겨질 것』이라고 밝혀 재벌구조개혁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떤 형태로든 공론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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