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확하고 유려한 문장/수필의 참맛 “새록새록”/관념적 감성적인 문체 범람 시대에 꾸민티 없는 진솔·소탈한 멋 정겨워어렵게 돈 번 성공담, 재벌총수나 명망가들의 삶, 기구한 역정을 담은 수필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흔히 자전 에세이로 통하는 이 책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상업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제대로 된 수필로 이름 붙이기는 더욱 힘들다.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도 보기 드물다. 이런 현상을 걱정해 온 수필가 윤모촌(72)씨가 15년여동안의 수필생활을 정리하며 「산마을에 오는 비」(한마음사간)라는 수필선집을 냈다.
79년 쉰여섯의 나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오음실주인」이 당선해 등단한 그는 「정신과로 가야 할 사람」 「서울뻐꾸기」등 두 권의 수필집을 내놓았다. 선비기질, 향수와 생활사에 대한 담담한 묘사로 수필의 은근하고 진정한 멋을 보여주어온 그는 십이지장궤양과 시력감퇴로 청탁이 아니면 더 이상 글을 쓰기 힘들다고 선집발간의 뜻을 설명했다.
중문학자 차주환(서울대 명예교수)씨는 그의 수필을 두고 『볼품 사납게 가다듬은 티가 없고, 자신의 인간됨을 꾸며서 내놓지 않아 진솔하고 소탈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평한다.
「방 안에서도 손이 시리다. 예년같으면 매화분에 봄소식이 전해졌을 때이나, 날씨가 사나우니 춘심이 주춤할 수밖에 없다. 인정의 기미를 잘 나타낸 완당의 세한도가 그 때문에 오히려 따뜻하다」(「세한도」중), 「바람을 타고 가던 씨가 좋은 집 뜰을 다 제쳐 놓고, 하필이면 왜 내 집 좁은 뜰에 내려와 앉았단 말인가. 한여름 낮, 아내가 수돗가에서 일을 할 때면, 오동나무 그늘에 나앉아 넌지시 얘기를 건넨다. 빈주먹인 내게로 온 아내를 오동나무에 비유하는 것이다」(「오음실주인」중)등 그의 문장은 정겹고 은근하다.
며칠전 한 월간문예지의 수필심사를 맡아 40여편을 몇번씩 읽었으나 당선작이 없더라는 그는 문장이 턱없이 길거나 관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잘못된 경향이라고 지적한다.
수필은 사실 15∼20장을 채우기도 힘든데 많은 작품이 긴 문장으로 그 분량을 넘기고 있다. 그래서 글에 함축력이 없고 은근한 맛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또 시에서나 쓰일 감성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들이 수필의 섬세한 맛을 해치고 있다.
그는 『수필전문지가 7개나 되어 수필문학이 번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고유영역이 사라져 가고 있다』면서 『문장만으로 남이 알아볼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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