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키드의 사랑」은 유하가 발간한 시집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되어야 할 것같다. 「무림일기」를 쓰고 압구정동을 풍자할 때의 그 바깥 풍속에서 빌려온 강한 탄력과, 고향의 「하나대」를 추억하고 연애시집을 묶으며 은밀하게 양생한 자력이 여기서 한데 합해 새로운 공력을 이루었다. 남도사람 특유의 리듬이 시정의 온갖 잡된 말들을 흥겹게 꿰어차고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하는 한 세대의 열병든 풍속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과 질투하는 사람으로 나뉘던 그 분열로부터 벗어났다. 대신 이제 그는 자기 세대의 감수성을 스스로 고백하고 누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분석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그의 시적 자아를 책임진다.문제는 이 책임이 여전히 하나의 역설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 사춘기 이후에 삶을 구성해온 「감미로운 독약의 향기들」에 의해, 세운상가 뒷골목으로 표현되는 전자문화 쓰레기문화 키치문화에 의해, 그 순결한 유년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말한다. 동시에 그는 이 「후끼된 진실」들이 어떻게 삶의 매 순간에 그 추억을 되살려내고, 거기에 비범한 넓이와 높은 속도와 강렬한 활력을 주었는지를 말한다. 이 마약성의 「중독된 사랑」 뒤에 남는 공허가 무엇이며, 허송된 세월이 무엇인지, 점점 더 갑작스러운 환희를 필요로 하게 되는 감수성의 「굳은 살」이 무엇인지를 또한 말한다. 불투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대의 별종이라고만 여겼던 「세운상가의 키드」를 우리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는 제 열정적인 사랑의 희생자이며, 그 점에서 매우 인간적이다. 여기에 분석의 역설이 있다. 「어쩔 수 없었어요」는 「그러나 어쩌겠어요」가 되며, 분석과 책임은 합리화의 수단이 되고, 거기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은 거기 영원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폭력배의 「날 건드리지마, 나도 감당할 수 없어」에도, 바람난 애인의 「나는 그런 여자예요」에도 자기분석이 있다. 그러나 유하가 분석의 음모를 꾸몄다기보다, 이 시집에서 그대로 시의 제목이 되고 있는 여러 영화와 소설의 제목들이 시사하듯 그의 삶이 하나의 복제이며, 분석도 그 모형 안에서만 시도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그는 끝까지 가기를 바라나, 테두리가 미리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험가가 아니라 한량이다. 앞으로 유명한 말이 될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는 시구도 그렇다. 나머지 이할은 이 시구에 빌미를 준 서정주에도 배당될 터인데, 그것이 시인을 키우지는 않았어도 그를 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정주는 재빨리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량에게는 어느 지경에서도 돌아갈 고향이 있고 그 원조가 있다. 그러나 유하가 한량이라 하더라도, 그는 자기 소일거리를 장인의 경지에까지 밀고 갔다.<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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