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한국일보 11월9일자 보도) 우리나라에서 쌀농사는 식량 공급과는 별도로 연간 수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환경기여가치를 갖는다고 한다. 쌀농업은 홍수 조절, 수자원 보존, 수질 정화, 토양유실 경감, 폐기물 처리, 대기 정화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인위적으로 시행할 경우 연간 최소 3조1천억원에서 최대 7조8천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이 수치가 쌀농업의 환경기여가치에 대한 정확한 측정치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쌀농업이 우리 국민경제와 사회에 대해 갖는 기여도는 단순한 식량 공급에 한정시켜 볼 수 없다는 점이다.이같은 맥락에서 최근 구미 학계에 회자되고 있는 개념이 이른바 「녹색비용(GREEN PAYMENTS)」이다. 농업경제 또는 농민공동체가 범사회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은 다양한 토착 농산물의 안정적 공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정 수자원·대기·토양 등 환경자원의 보존 및 제공, 농경공동체의 삶에 배어 있는 사회문화적 전통의 계승, 환경적으로 건전한 주거 및 휴식 공간의 제공 등 오늘날 도시인들의 삶에서 상실되고 있는 귀중한 자원들을 보존·제공하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응분의 지원 및 보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리가 녹색비용이다.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볼 때, 농민들뿐 아니라 도시인들 자신의 삶의 질의 지속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농업생산기반과 농민공동체가 안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미 각국은 이미 이같은 시각에서 농민들에 대한 다양한 새로운 종류의 지원책들을 마련해 시행해 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농업의 경제적 기여뿐 아니라 비경제적 기여까지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차원의 농촌지원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굳이 서구 각국의 지략을 따르지 않더라도 농업이 수행하는 청정환경의 보존, 사회문화적 전통의 계승, 건전한 주거와 여가 공간의 제공 등 다양한 비경제적 기여에 대한 응분의 보상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업·농촌 문제에 접근하면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가하는 여러가지 제약을 벗어나서도 농민들을 폭넓게 보호·지원하는 묘안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민자당은 최근 농민의 사기진작을 위해 매년 11월11일을 「농민의 날」로 지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는데, 이러한 상징적 조치를 뒷받침하는 차원에서라도 농업이 수행하는 경제적 및 비경제적 기능을 종합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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