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에 나오는 간첩얘기는 가끔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한다. 강인한 육체, 뱃심, 백발백중의 총솜씨, 칼솜씨, 그리고 유창한 외국어와 으레 따라붙는 미녀들은 정말이지 용기있는 젊은이라면 한번쯤 저런 역을 해봤으면 하는 욕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철통같은 나바론 요새를 침투대원이 일격에 부수는 모습, 독일군 미사일기지를 찾아내 기어이 파괴하고 마는 연합군특공대원들, 소련스파이에 대항해 싸우는 미CIA요원들, 이런 것들을 다룬 영화관은 그래서 늘 만원을 이룬다.간첩이 최근 북한에서 줄줄이 파견됐었다. 지난 10월17일 임진강에서는 3명쯤이 안개짙은 새벽 휴전선 철책을 넘어오다가 1명은 사살되고 다른 2명은 도망갔고 25일에는 충남 부여에서 한국에 10년간 고정간첩으로 활약하던 어떤 자를 북한으로 데려가기 위해 남파된 간첩 2명이 발견돼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1명은 허벅지에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생포되고 다른 1명은 도망했다가 4일만에 기동대에 의해 사살됐었다. 이 작전으로 경찰 2명이 전사하고 다른 1명이 부상했다.
남파된 간첩중 2명은 사살된 채로 잡혔으나 나머지 1명이 생포돼 자신이 북한 노동당 문화국소속 간첩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입장이 난처해진 북한은 지난 1일 6·25때의 영국군전사자 유해라고 주장하는 유골 1구를 판문점을 통해 유엔군측에 전달해 국제관심을 유화쪽으로 돌리려 했다. 북한이 영국군 유해라고 주장한 것을 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은 달러를 받거나 화해공작 차원으로 미군유해 249구를 유엔측에 보냈는데 이중 단 2구만 미군인 것으로 밝혀졌을 뿐이어서 이번에 보낸 「영국군 유해」라는 것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첩보원(간첩)은 상대국의 국가기밀입수, 중요시설파괴, 인명살상 납치, 질서교란을 목적으로 적의 심장부에 뛰어든다. 나치독일의 히틀러독재나 소련공산제국의 흉계를 꺾기 위해 젊은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악의 제국을 서슴없이 침노하는 것이다. 악의 제국을 부수는 일이면 정말이지 목숨을 걸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가당찮은 장기독재와 죽음에 이를 정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젊은이들이 세계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고 있는 한국땅에 총칼을 들고 간첩질을 하러 오는데 있다. 자유가 뭔지 모르면서 자유를 부수려 하고 국가부가 뭔지 모르면서 그 질서를 파괴하려 든다.
45년 남북분단이후 끈질긴 간첩 침투작전을 실시해온 북한은 놀랍게도 지금 약 4만2,000명의 고정연락망을 남한의 이곳저곳에 심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휴전선을 넘나드는 암호전파수, 생포된 간첩들의 진술등으로 미뤄보면 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 북한 화해정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북한이 간첩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대 남한정책이 지난 50년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김일성시대의 대남 간첩활동 조직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 두어가지 결론을 낼 수 있다. 첫째는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간첩을 안고 살았으며 앞으로도 북한이 존재하는 한 간첩은 여전히 침투하고 활동할 것이라는 것이고, 때문에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면 할수록 북의 간첩활동을 제압하기 위한 전문기관의 전문화, 강력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공 담당부서들은 정치에 이용됐다는 지난날의 오명을 씻고 과감한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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