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조사 「성과확보」 힘들어/총수 직접소환 고집에 「의도」 반영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 검찰의 수사가 재계전면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재계수사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일까지 검찰의 조사를 받았거나 소환통보를 받은 재벌총수는 모두 24명. 이같은 추세라면 금주중 30대 재벌기업 총수 전부가 소환조사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주말을 고비로 재계수사는 마무리될 것이란 예상이다.
검찰의 재계수사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분석자료」는 우선 소환순서와 날짜. 지난 4일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7일부터 재벌총수 소환을 본격화하면서 비교적 중위권 그룹이라고 할만한 진로, 한일, 동부그룹 총수를 가장 먼저 소환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어 8일에는 국내굴지의 「메이저그룹」총수들을 대거 소환했고 9일과 10일에는 30대 그룹의 나머지 총수들을 부르는 수순을 택했다. 사건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이 『소환순서는 무작위로 선정된 것일뿐』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음에도 불구, 소환순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조사시간이 길지 않은 부분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재계 거물들을 하루에 5∼6명씩 동시에 소환하면서 1인당 7∼17시간만을 조사했다. 이 정도 시간으로는 밀도있는 수사나 새로운 사실 규명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로인해 검찰의 재계수사가 이미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 기본적인 진술을 받아내려는 데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미 지난해 30대재벌을 대상으로 한 6공 비자금 내사에서 상당부분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과 당시 내사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이 이번 수사팀에 보강 투입됐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이번 재계수사는 결국 이미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노씨 비자금 사건의 전체구도를 잡는데 필요한 절차적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다시 말해 수사의 성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국책사업과 관련, 뇌물성 자금을 제공한 혐의가 명백하거나 실명전환등 불법행위와 관련된 4∼5명의 기업인은 다음주중 재소환절차를 거쳐 노씨와 함께 사법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선별작업을 이미 마쳐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 대한 전면수사는 사실상 상징적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유력하다. 재벌 기업들의 과거 혐의를 규명, 처벌하려기 보다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굳이 재벌총수의 직접소환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박정철 기자>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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