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는 가운데 국민학교 교사인 전태수선생님의 편지를 받았다. 전선생님은 작문교육에 특히 정성을 쏟고 있는 분인데, 그의 편지를 여러분과 같이 읽고 싶다.<…3년전 글짓기 대회에 참가할 아동을 인솔하는 책임을 지고 서무실에 출장비를 청구한 적이 있습니다. 서무직원은 가까운 곳에 갈 경우 버스비만 지불하도록 돼 있다면서 버스토큰 두개를 주었습니다. 대회장까지는 마땅한 버스노선이 없어서 제 돈으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을 보면서 그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평범한 교사지만, 제가 하는 일이 나라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점에서는 대통령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용돈이 수천억원이라구요?
「과학기술의 선진화」란 말은 고위당국자들이 자주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초교육기관인 국민학교의 과학교육 기자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국민이 안다면 놀랄 것입니다. 작은 예를 들어 암막(붉은색 융단과 검은색 융단을 겹쳐 만든 막)은 광선관련 실험을 할때 반드시 필요한 커튼으로 개교할때부터 갖춰야 하는데, 저는 암막없는 여러 학교를 본적이 있습니다.
또 몇년전에는 포로수용소처럼 더러운 교실 벽을 보다 못해 제가 페인트칠을 한적도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돈이 없으니 내년에나 칠하자고 하셨지만, 도저히 그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91년 일본의 한 소학교에서 한달간 실습하면서 마치 간첩이라도 된듯이 그 학교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일본의 교사들이 한국의 국민학교를 단 한시간만이라도 살펴본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고소를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개혁, 교육입국」하는 역대정권의 나팔소리가 요란했지만, 일선교사들의 귀에는 「개나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많은 교사들을 대신하여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정신이 그토록 썩고,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무슨 교육개혁이 되겠습니까…>
썩어 빠진 권력층의 나팔소리가 「개나발 소리」로 밖에 안들렸다는 통렬한 비판, 토큰 두개와 비자금 수천억원이라는 무서운 대비는 나라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분노와 배신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비자금 수천억원과 암막 없는 학교, 누가 그 나라에서 진정한 희망을 보겠는가.<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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