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불신 심화속 카드 마땅찮아 고민굵직한 재벌총수들이 줄지어 검찰에 소환된 8일 청와대는 조용하기만 했다.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이 부산하게 돌아가는데 비해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아무런 공식일정을 잡지않았다. 평일인데도 공식일정을 잡지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의 해법을 풀기위해 깊은 생각에 몰두하고 있다』며 「태풍전야의 고요함」에 비유하는 시각이 많다.
사실 김대통령의 움직임이 부쩍 잦아든 것은 지난주부터이다. 주말을 부인 손명순 여사와 청남대에서 보내고 올라온 김대통령은 6일에는 이시윤 감사원장, 7일에는 홍재형 경제부총리의 주례보고만을 받았을뿐이다. 이와 때를 맞춰 청와대식구들에게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과 관련, 『알려고도 하지말고 말도 하지말라』는 함구령이 떨어졌다. 한승수 비서실장도 갑자기 『비서실 직원들의 복무자세가 해이해졌다』며 내부 기강확립에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17일부터 시작되는 일본 오사카방문과 APEC정상회의를 준비할수 있는 시간을 갖기위해 일정을 줄인 것』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청와대가 조용하다고 해서 물론 김대통령이 쉬고있다는 뜻은 아니다. 철저한 보안으로 인해 밖으로 드러나지않지만 외부인사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난국타개를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또 각 수석비서관 방에 연결된 대통령 직통전화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바쁘게 울리고 있는 것도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의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와 관련, 김대통령은 우리 국민사이에 퍼져있는 극도의 정치불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특히 『어느 누구로부터도 한푼도 받지않겠다』고 수차 공언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나 정부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상당수가 그 말을 믿지않는 것으로 나타나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다.
검찰수사가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뒤 『과거의 잘못된 정치관행에서 벗어나기위해 모두가 반성해야한다』는 취지의 대국민담화가 있을 것이라는 외에 김대통령의 해법은 아직 드러나지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대통령이 비자금 정국을 풀어가는 열쇠는 역시 개혁에서 찾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둘때 개혁의 강도를 마음껏 높일수만도 없는게 현실적 제약이어서 김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같다.<신재민 기자>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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