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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소환을 보는 눈(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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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소환을 보는 눈(사설)

입력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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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상급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고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재벌 총수들이 굳어진 얼굴로 소환에 응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본 국민들의 가슴은 착잡하기만 하다. 나라경제의 견인역은 물론이고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며 한국경제를 사실상 대변해온 우리나라 대표 재벌들의 그런 모습이 더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잇단 재벌 총수소환을 바라보는 국민적 바람은 두가지임이 분명하다. 하나는 이런 국가적 불행과 아픔을 겪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의 오랜 고질이었던 정경유착을 확실히 없애는 계기가 되어야 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바람은 이번 비자금사건의 정확한 진상파헤치기 수사에 겸허히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자신이 말한 5천억원 규모의 이른바 통치자금 조성과정과 사용처에 대해 계속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재벌그룹 총수들이 소환되고 있는 것도 노전대통령이 「국가적 불행」을 막는다며 입을 봉한채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환된 재벌 총수들 역시 그 어떤 이유로든 노전대통령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진상을 밝힐 길이 없게 된다.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고 국민 여론이 또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조사의 한계를 이유로 사건을 덮어버리자고 말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입을 봉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최후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사대상은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고 경제적 파급영향과 국가적 손실도 덩달아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도 재벌 총수들에게 자기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스스로 잘못을 털어놓고 처벌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진상이 밝혀지고야 말 것이라는데 대한 믿음이 있다면 먼저 자진해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현명함일 수도 있다.

재벌 총수들의 협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검찰의 자세다. 이번의 재벌 총수 대거 소환을 의혹의 눈길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사건을 조기에 축소 종결하기 위한 의례적인 절차」나 「수사를 마무리해 들어가는 수순」 「비자금 정국 돌파를 위한 여권의 다목적 카드」 등의 논평이 나오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재벌 총수들까지 대거 소환 조사해놓고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태수습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상급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됨으로써 가져오는 국가 위신의 실추와 음양의 경제적 손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분명한 해결 없이 지금 이 사건을 덮는다고 해서 그 손실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빨리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국가의 불행을 줄이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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