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마친후 새벽까지 차례 귀가/출두때 굳은 모습대신 홀가분 표정/노씨 소환때와 달리 일반 조사실에서 신문받아/그룹관계자들 수사방향 분석하며 초조한 기색국내 굴지의 재벌그룹 총수 5명이 소환된 8일 서초동 대검청사 주변에는 영하의 날씨보다 더 매서운 사정 바람이 불었다. 그룹 총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룹 임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검찰에 출두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전날에 이어 이날 재계 톱랭킹의 그룹총수들을 조사한다는 중요성 때문인지 어느때보다 일찍 출근해 조사에 대비했다.
○출두 및 귀가
○…상오 10시께 출두하기 시작해 종일 조사를 받은 5개 그룹 총수들은 하오5시50분께 LG그룹 구자경 회장, 9시30분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순으로 귀가했다. 그러나 이날 하오 가장 늦게 출두한 한일그룹 김중원 회장,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등은 자정 넘어까지 조사를 받았다. 귀가하는 총수들은 출두때와 마찬가지로 보도진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으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듯 다소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삼성그룹 이회장은 검찰출두 11시간30여분만인 하오 9시30분께 귀가하면서 『노씨측에 돈을 건네준 사실이 있느냐』는 등 질문에 가벼운 웃음소리만 낸 뒤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수행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청사를 빠져나갔다.
○…LG그룹 구명예회장은 검찰조사 8시간만인 하오 5시50분께 소환된 총수들중 가장 먼저 귀가했다. 몹시 상기된 표정의 구명예회장은 『노씨에게 얼마나 건넸는지 한마디만 해달라』는 보도진의 질문공세에 입을 꼭 다문채 총총히 청사를 빠져 나갔다.
검찰주변에서는 구명예회장에 대한 조사가 가장 먼저 끝난 것에 대해『구명예회장이 6공으로부터 받은 뚜렷한 특혜가 없어 조사할 내용이 다른 재벌에 비해 적은데다 검찰 조사에 순순히 응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총수인 김중원회장이 출두한 한일그룹의 김정재 부회장도 하오 10시40분께 수행원을 대동하고 청사 옆문을 통해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김부회장은 처음에는 취재진 몰래 살짝 들어가려했으나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려들자『조사에 협조하기위해 왔다』며 신원과 방문목적을 밝힌뒤 중수부장실로 올라갔다.
○…이에앞서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상오9시56분께 이날 소환된 5개 그룹총수중 맨 처음 대검청사에 도착했다. 감청색 양복차림의 최회장은 현관앞에서 잠시 사진기자들의 취재에 응한 뒤 건장한 체구의 직원 7∼8명의 호위를 받으며 일체 답변없이 11층 조사실로 향했다.
최회장은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해 10월21일 서울지검에 소환된 적이 있어 다소 여유있는 모습이었지만 7일 하오9시30분께 리비아에서 급거 귀국한 탓인지 피곤해 보였다.
○…삼성그룹 이건희회장과 LG그룹 구자경명예회장은 최회장 도착 10여분후인 상오 10시5분께 약속이나 한 듯 연달아 출두했다. 검정색 벤츠승용차에서 내린 이회장은 다른 총수들과 달리 검찰 출두가 처음이어서 낯이 익지 않은듯 현관 앞에서 대검청사 주변을 잠깐 쳐다보았다.
이회장은 직원 5∼6명과 임원들이 주변을 감싸자 회전문을 통과, 로비에 운집한 보도진과 대면했다. 이회장은 노태우전대통령에게 준 돈의 액수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엷은 미소로 대답하고 침착하게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걸어가 조사실로 향했다.
○…LG그룹 구명예회장은 이회장에 곧이어 대검청사에 도착했으나 승용차안에서 1분여동안 이회장이 조사실에 올라가길 기다린 뒤 승용차에서 내렸다. 회색싱글 차림의 구명예회장은 최·이 두 그룹회장과 달리 잠시 포즈도 취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지나 조사실로 올라갔다.
구명예회장은 연이은 기자들 질문에 『그만하자』 는듯 오른손을 잠시 들어 흔드는등 여유를 보였으나 표정은 굳어있었다.
○…대림그룹 이준용회장과 한일그룹 김중원회장은 하오3시20분과 4시50분에 각각 출두했다. 이회장은 이날 소환대상자에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바쁜 일정을 이유로 이날 스스로 출두를 통보, 갑자기 소환이 이뤄졌다. 이회장은 『어디가 포토라인입니까. 이 자리에 서면 됩니까』라며 매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김회장은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출두해 다소 피곤해 보였으나 조사이유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사실 이외에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
○…5개 그룹 총수들은 노씨가 조사받은 특수조사실과 같은 11층의 일반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일반조사실은 면적이 5평으로 특수조사실의 4분의 1 크기. 소파와 침대는 없고 딱딱한 철제 의자와 책상만 있다.
검찰은 검사실에서 자금담당 임원을 별도 조사하면서 그룹 총수들을 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룹총수들의 점심식사를 외부식당에 주문했는데 이회장은 돌솥비빔밥, 구명예회장과 최회장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들었다.
○…총수가 조사를 받는 동안 5개 그룹 임원 30여명은 10층 중수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검찰 수사방향등을 분석하고 정보를 교환하는등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5개 그룹 임원들은 진로그룹 장회장이 철야조사를 받자『진로그룹이 뭔가 있는 모양』이라는등 수군거렸다.
한 그룹 임원은『검찰 조사가 결코 통과의례는 아닌것 같다』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검찰은 장회장 철야조사에 대해『예정보다 늦게 출두했고 휴식시간이 많아 밤을 지샌 것일뿐「철야조사」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기자들의 관심이 온통 5개 그룹 총수에 쏠린 틈을 이용, 노씨 사돈인 동방유량 신명수 회장을 전격 소환했다. 신회장은 대검 지하 주차장을 이용, 이날 상오 일찌감치 검찰에 출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강민 중수부장은 『소환시간이 언제냐』 는등 항의성 질문을 받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지키고 섰는데도 몰랐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되레 핀잔을 주기도 했다.
○…5개 그룹 총수가 소환되자 소환일정을 놓고 각 그룹의 치열한 눈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은 당초 대림그룹 이회장에게 9일 출두를 요구했으나 이회장측이『일정상 오늘이 좋겠다』고 적극 나서 이날 하오 소환했다.
또 쌍용그룹 김석원 고문(전회장)은 『외국 출장을 가야 하는데 9일 나가면 안되겠느냐』고 검찰에 먼저 연락해 일정이 잡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는 상위권 그룹에 포함돼 시선을 덜 받겠다는 심리와 「이왕 맞을 매 먼저 맞겠다」는 발상이 합쳐진 결과』라고 분석했다.<박진용·박정철 기자>박진용·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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