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 「검은 유착」 이번엔 끊어질까/평소엔 돈줄·정치변혁기엔 단죄의 대상/총수들 시련 광복후 벌써 4번째/“줄 없어도 기업흥하는 풍토돼야”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과 관련한 재벌총수들의 무더기 검찰소환은 한국 재계사에 또 한차례 부끄러운 페이지를 남기게 됐다. 「참고인」자격이긴 하지만 삼성 현대 LG 대우등 전경련회장단 대부분이 검찰청에 집단출두하게 된 것은 61년 전경련 창립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결코 길지 않은 한국재계의 연륜에 비해 「오욕의 기록」은 의외로 두껍다.
최초의 시련은 해방정국의 반민특위. 화신백화점의 설립자인 고 박흥식씨등 기업인들이 일제와 협력하여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된 것이 처음이다. 두번째는 60년 4·19혁명이후 과도정부에 의해 추진된 부정축재자 처단이다. 자유당정권에 돈을 주고 기업을 키웠다며 상당수 기업인을 부정축재자로 몰았다. 23명의 기업인이 단죄의 대상이 됐다. 세번째는 5·16쿠데타 세력에 의한 기업인 숙정이다. 쿠데타 12일만에 당시 내로라하던 9명의 기업인들이 특별구치실로 연행됐고 해외체류 기업인에게는 구속명령이 내려졌다. 노씨 사건으로 인한 검찰소환은 네번째 시련인 셈이다.
5공출범때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당시 전두환국보위상임의장을 비롯한 신군부는 주요 공직자들을 부정축재혐의로 처단한뒤 기업인들을 그들의 부정축재를 도운 사람으로 몰았다. 노씨 사건으로 이번에 검찰소환명령을 받은 바로 그 총수들이 80년8월 뇌물거래를 않겠다는 취지의 자정결의대회를 가졌다.
기업인의 수난은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반민특위에 체포된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일정시간이 지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과도정부에서는 부정축재자에 대한 처리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5·16으로 유야무야됐고 5·16군사정권에 붙들렸던 기업인들도 「산업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군사정부의 방침으로 경제재건을 선도하는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재벌들은 정치변혁기에 「길들이기」의 주대상으로 부각됐고 그때마다 정치권의 판단으로 다시 면죄부를 받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정치권에 의해 기업인은 변혁기에는 「단죄의 대상」, 평상시에는 정권유지를 위한 「돈줄」역할을 한 셈이다.
또 하나 반복된 역사는 그렇게 해서 산업전선에 나선 기업인들이 기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하나같이 새롭게 형성된 정치질서와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돈이 필요한 정치인들은 기업인을 이용했고 기업인들은 기업활동을 계속함은 물론 기업을 키우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재계 50년사 내내 계속됐다.
정경유착현상이 극에 달한 것은 5·6공시절이다. 5공때 갖가지 명목으로 청와대에 돈을 낸 기업이 모두 5백37개, 돈의 액수는 새마을성금등 4대 성금만으로도 1천45억원에 이르렀다. 노씨가 조성한 자금이 최소 5천억원이어서 청와대에 기탁된 「검은 돈」이 5년이 흐르는동안 4배이상 늘어났다는 계산이다.
이같은 뿌리깊은 정경유착은 노씨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사법적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기회에 돈을 매개로 한 정치권과 재계의 검은 고리는 분명히 끊어져야 한다는게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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