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과 친인척이 소환되기 시작함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및 독직·부정축재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제 비로소 조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재벌 그룹에 대한 조사는 노전대통령이 밝히기를 거부한 정치자금과 뇌물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헤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어서 조사과정에 집중되고 있는 국민적 관심과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지금까지 검찰 조사는 다소 답답한 감은 주었지만 그런대로 공명하게 진행돼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의 재벌그룹 조사와 관련해서는 몇가지 불투명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검찰은 이번에 진로와 동부그룹, 한일합섬등 중하위권 그룹 총수들을 먼저 소환한데 대해 아무 기준이 없고 「무작위」로 선정됐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5천억원이나 되는 돈을 모으는데 50대 그룹이 다 관련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는게 상식인데 몇개 그룹을 임의로 소환했다면 나머지 그룹도 다 불러야 공정한 처사가 된다. 50대 그룹을 전부 조사하지 않는데 이들만 무작위로 뽑아 조사한다면 이건 공평치 못한 일이고 조사 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된다.
재벌그룹을 다 소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추첨식의 「무작위」는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조사과정에서 비위 부정의 정도가 심하거나 뇌물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그룹, 또는 비자금 제공액수가 큰 혐의가 있는 그룹 순으로 기준을 정해 차례차례로 불러 조사하는게 옳은 태도일 것이다.
아무런 방침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무작위로 재벌 그룹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면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영향을 증폭시켜 불필요하게 불안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고 조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도 흠을 남길 수밖에 없다. 친인척과 측근들을 조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별적으로 조사한다면 기준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 조사하는게 공정한 태도다.
비자금 조사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검찰이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 불투명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50대 그룹과 친인척 측근들을 다 조사하는 것인지, 다 조사하지 않고 선별적으로 한다면 그 선별의 기준은 어떤 것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밝히고 조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가적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체 국민의 절대적 성원과 신뢰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번 조사가 공연한 오해나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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