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기본은 물론 노래다. 윤복희(49)는 그 위에 춤과 연기라는 날개를 더 가지고 있다. 그는 부모로부터 연예인 기질을 물려받았고 여섯살 때부터 무대에 선 남다른 이력이 있다.노래 내용에 따라 울고 웃으며 변하는 표정,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무대에서 잔뼈를 키운 가수답게 무대를 휘젓는 열정, 안정된 가창력등이 그의 매력이다.
<웃는 얼굴 다정해도 믿을 수 없어요 때가 되면 떠날 줄 알았으니까 손짓 몸짓 없어요…> (「웃는 얼굴 다정해도」, 1967년, 윤항기 작사·작곡) 웃는>
4년여의 외국 활동을 마치고 1967년 국내 가요계에 데뷔했을 때 윤복희는 이 노래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부모인 윤부길(희극인)·고향선(무용가)을 일찍 여읜 연예인의 딸이라는 사연과 귀국할 때 입었던 파격적인 미니 스커트도 당시 그를 스타로 만드는데 한 몫을 했다.
물론 그의 인기는 오빠 윤항기의 넓은 배려 안에서 이루어졌다. 국내 그룹사운드 1세대인 「키 보이스」의 멤버였던 윤항기는 날렵한 그의 외모만큼이나 예리한 음악적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작사·작곡 그리고 지휘에도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던 윤항기는 지금까지 윤복희와 자신이 불렀던 거의 모든 노래를 만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어떡하라구」 「장미빛 스카프」 「친구야」 등이 두 남매를 대표하는 노래들이다.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가 만들고 동생이 불러 대상을 받은 「여러분」은 가요사에 명곡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은 음악으로 고난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팬들의 가슴에 남았다. 윤복희는 이제 가수라기 보다는 뮤지컬 배우로, 윤항기는 목사로 중년을 살아가고 있다.
『이전의 나는 결벽증, 욕심등으로 괴팍한 여자였어요. 빼앗기고 살았다는 피해의식이기도 했죠. 하지만 종교를 갖고나서는 복많은 여자란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오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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