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또 이들에 대한 소식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세계화가 되어 가는 것은 연주자뿐 아니라 우리나라 관객(청중)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악회를 가보면 관객의 수준이 전보다 현저하게 올라간 것이 느껴져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객석매너도 점점 세련되지는 것같고 연주에 대한 반응도 이제는 상당히 민감하다. 못하는 연주자에 냉담하고 심할 때는 중간에 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제 연주자들은 얼렁뚱땅 경력이나 내세워 연주를 해서는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객석이 똑똑해져야 무대위의 수준도 올라가는 것이다.
관객이 똑똑하게 되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식을 갖추게 하는데 비교적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 중의 하나가 공연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는 연주자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공연내용에 대한 해설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시간내에 읽는 간략한 해설이라도 요령있고 핵심적일 때는 공연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핵심적인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는 일은 그리 흔하지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을 보면 관객을 「이끌어 주는」 본래의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똑똑해진 관객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가 많고, 그리하여 관객의 불만을 사며, 도움은 커녕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오페라공연의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본다.
보통 호화롭게 만든 프로그램은 거의 100쪽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중 반은 광고로 채워진다. 광고협찬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나머지 수십쪽은 터무니없는 낭비이다. 꼭 필요하다면 한두개로 족할 인사말과 축사등이 심할 때는 10여쪽에 이르는 수도 있고, 조연출과 반주자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과 스태프의 사진이 너무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다. 소책자로 따로 만들어져야 할 대본이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것은 우리의 공연계의 관례라 치더라도 정작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실질적 정보」는 여러 프로그램을 들쳐 보아도 발견하기 어렵다.
극장앞에 즐비한 화환만큼이나 호화스럽되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이 프로그램의 모습은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관객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프로그램을 허술하게 만드는 것은 연주자가 손님으로 온 관객을 소홀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빨리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외면당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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