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령으로 지탄받고 있는 노태우씨가 내무부장관직에서 위세를 떨치던 83년 4월 대도라는 큰도둑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했다. 39세의 상습절도범 조세형이 무기징역을 구형받자, 법원 구치감의 환풍기를 뜯고 수갑을 찬채 탈주, 6일만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붙잡혔던 것이다. 대도라는 별명은 그의 범행수법이 여느 절도범이나 강도와 다른데다, 통이 컸기 때문에 붙여졌다. 대낮에 혼자 대형드라이버만을 들고 재벌회사회장 병원장 고위공무원 전직국회의원 등 부잣집만을 골라 턴 전과11범이지만 단 한번도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 더구나 의적 흉내를 내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까지 퍼져 더욱 드라마틱했다. 내로라하던 유명인사의 안방 한군데서만 에메랄드 루비, 5.6캐럿짜리 물방울다이아몬드 등 4억원어치가 쏟아져 나왔다. 그 보석들의 현란한 빛은 차츰 계층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병인으로 작용했다. 서민들은 조를 통해 「너무 가진 자」를 간접응징, 대리만족하는 듯했고 통쾌감 비슷한 공감대가 사회저변에 깔리기 시작했다. 징역15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청송교도소에서 복역중인 그는 지금 전직대통령의 부정축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경실련공동대표인 서울대 사회교육과 손봉호(57)교수는 84년부터 「유산남기지 않기 운동」을 뜻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벌이고 있다. 회원이 벌써 280여명으로 늘어났다. 회원들은 서로 얼굴을 모르고 정기모임도 없지만 불문율 하나만은 반드시 지킨다. 해가 바뀔때 마다 『전재산의 70%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이운동은 기독교의 청지기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손교수는 『우리는 주인대신 재산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므로, 돈과 재물은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로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식들에게 가장 좋은 유산은 부모의 덕과 사랑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언제쯤 청지기사상이나 불가에서 말하는 공수래 공수거의 경지에 오르게 될까. 새삼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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