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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첫 장편 「랩소디…」(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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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첫 장편 「랩소디…」(소설평)

입력
199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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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꿈처럼 몽롱한 분위기배수아의 첫 장편 「랩소디 인 블루」(고려원간)를 읽고 나면 아마도 머리 속엔 다음 한 문장이 남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한낮의 몽롱한 꿈과 같다」 과연 이 작품은 전체가 한낮에 꾼 몽롱한 꿈같은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지만 그들은 전혀 대지 위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며 그들이 겪는 이러저러한 사건들 역시 흡사 신기루의 한 장면같이 비현실적인 빛깔로 감싸여져 있다.

이 작품은 막 서른살의 관문을 통과한 미호라는 이름의 여자가 열아홉살 무렵과 스물네살 무렵 겪은 일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녀 주위엔 오랜 별거 끝에 이혼하고 각각 새 살림을 차린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그녀와 사소한 문제로도 자주 다투는 오빠가 있고 입시학원에서 만난 신이 윤이 신유리 경운이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밖에 고등학교동창인 정이, 그녀와 사련에 빠졌다가 나중에 주인공과도 관계를 맺게 되는 미술선생 김형식, 또 오케스트라의 아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상들의 단편만으로 드러날뿐 통일성과 구체성을 갖춘 개별적 존재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상실감과 허무감, 가치관의 부재를 말하고 싶어 한 것일까. 젊은 날을 회고하며 주인공은 가끔 「변하고 있는 것들의 일회성, 영원히 그 순간에만 행복한 생의 장면들」을 되뇌이지만 열아홉살때에도 스물네살때에도 주인공이 행복했다는 특별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한사코 견뎌내지 못하며 자기파괴 내지 자기방기에 극히 익숙한 몸짓을 해보인다.

물론 미호와 그녀의 오빠에겐 가족붕괴라는 비극이 주어져 있으며 신이나 경운에겐 가난한 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그들의 현실부적응증이나 자포자기적인 삶의 방식에 이유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들의 대응이라고는 「정말이지 내 주변에는 상관없는 일투성이야」라고 불평을 해대거나 「한없이 길고 느리게 계속되는 권태」에 탐닉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그들은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모든 책임으로부터 방면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길 잃은 세대의 정체성 부재현상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에서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예민한 감각은 주변의 사소한 사물이나 풍경에서 생의 거대한 공동을 찾아낸다. 텅빈 존재들이 텅빈 세계를 편력하며 일으킨 모래먼지는 조만간 가라앉을 것이며 일상은 그냥 덧없이 흘러갈 것이다. 이제 배수아는 감성과 감각을 넘어서 세계를 파악하고 보다 구체적인 싸움의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과제 앞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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