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명예는 생사를 초월한다. 정치인은 그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에 의해서 평가되며, 그것은 그의 사후에 더 명백히 판별된다. 4일 중동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자국국민의 총에 맞아 사망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명예의 의미를 알고 있는 정치인이었고, 그 때문에 끊임없는 암살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갖출 수 있었다.지난 9월의 팔레스타인 자치협정체결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에 주둔하던 이스라엘군은 철수를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에 빼앗길 때까지 민족의 생활터전이었던 이곳에 독립국가를 세울 기회를 갖게 됐다. 중동에 평화의 기운이 넘치고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지금 전쟁과 테러가 없는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설계하고 있다.
라빈총리가 피살된 이날 텔아비브 시청앞 광장에는 평화협정을 지지하는 10여만명의 시민이 모여 그의 연설에 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그 속에는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과격테러분자들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라빈총리는 경호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행사일정을 바꾸지 않았다. 신변의 안전보다 국민과의 약속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화의 지도자이면서 용감한 장군이었다. 67년 3차 중동전때 이스라엘군 총참모장으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으로 구성된 아랍연합군을 대파하고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테러로 세계가 편할 날이 없었지만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다시 시도하지는 못했다.
중동에 평화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군복을 벗고 총리가 된 후부터였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을 비밀협상에 끌어들여 93년 마침내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원칙선언에 조인하는데 성공했다. 이 업적으로 그는 시몬 페레스외무장관, 아라파트의장과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의해 가자지구와 예리코시,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인에게 내주게 된 이스라엘정착민과 아라파트에 반대하는 아랍의 과격테러단체들은 협정을 인정치 않고 투쟁을 맹세해 왔다. 라빈총리 암살은 누구에게나 예견될 수 있는 일이었다.
피살소식이 보도된 후 클린턴 미대통령과 페레스총리대행, 아라파트의장은 그의 죽음을 뜻있게 하기 위해서도 중동평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을 다짐했다. 평화와 개방정책에 따라 우리와 국교를 회복한 그는 지난해 서울을 찾아와 경제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인간이 세상을 사는 진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임을 목숨을 바쳐 보여준 그의 용기 있는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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