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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수 있는 재벌(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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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수 있는 재벌(장명수 칼럼)

입력
1995.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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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 총수들은 3일 긴급회의를 열고 『앞으로는 어떤 경우이든, 어떤 명분이든,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권력자에게 돈 뺏기고, 검찰에 조사 받고, 국민에게 욕먹고, 세무조사까지 받아야 할 곤경에 빠진 그들이 자정선언으로 우선 태풍을 피하려는 모습은 딱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그러나 그들의 자정선언을 믿을만큼 순진한 국민은 없다. 오랜 세월 온갖 종류의 결의대회에 번번이 속아온 국민은 이제 그런 행사 자체에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전경련도 여러번 자정결의를 했었다. 5.16군사혁명 직후인 61년에는 『부정축재를 안하겠다』고 결의했고, 80년 신군부가 집권하자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겠다』고 결의했던 과거가 있다.

그 결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80년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겠다는 결의대회가 끝나자마자 신군부 실력자들에게 줄을 대어 뇌물을 바치려고 동분서주했고, 15년후인 오늘도 뇌물이 문제가 되고 있다.

3일 재계중진들의 모임에서는 『누구나 내 돈은 아깝지만, 대통령이 돈을 달라는데 사업하는 사람이 어떻게 안 줄 수 있는가. 그때는 대통령에게 돈을 안 주는 것이 죄였는데, 이제는 돈을 줬다고 죄인 취급을 하니, 너무 억울하다』는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군사독재 아래 살아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재벌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과 특혜속에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고속성장을 했고, 그 과정에는 국민의 인내와 성원, 근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재벌들은 이제 국민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사업을 키우고, 수출을 늘려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돈을 좋아하니 경쟁적으로 돈을 바치고, 그 대가로 특혜를 얻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사업을 확장하려 했던 기업들의 행태는 대통령의 축재 못지않게 부도덕하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의 부패와 정부의 지나친 기업활동 규제가 뇌물의 온상이지만, 이제는 재벌들도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재벌이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깨닫고, 개발독재 아래 특혜성장을 하며 국민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느낄 때 그들의 자정선언은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 세상에 믿지 못할 거짓말중에 『나는 보통사람이라는 노태우씨의 말』이 새로 추가되었다는데, 『음성적인 정치자금 안 주겠다는 재벌의 말』이야말로 국민에게 영원한 거짓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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