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대거장 “명성” 오페라 「심청」 등 150여곡 남겨/동백림사건 등 파란의 일생… 조국 못 밟은채 영면4일 타계한 윤이상씨는 세계 음악계에 큰 자취를 남긴 작곡가이다.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히며 존경받아온 그는 동양의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색채의 선율로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자신의 말대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반복되지 않는 가을하늘의 구름처럼」 다양한 작품에는 민족적인 향기와 사회참여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예술외적인 이유로 최근까지 차단돼 왔다. 그는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 낸 불행한 예술인이었다.
1917년 경남 통영(지금의 충무)에서 태어난 윤이상은 음악을 하고 싶은 열망으로 17세때 가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오사카(대판)음악원에서 공부하고 44년 귀국해 활동하다가 39세때인 56년 다시 프랑스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59년 독일 다름슈타트음악제에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사건과 만나게 된다. 동백림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67년 서울로 강제송환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여 옥고를 치른후 영원한 방랑의 길을 떠났다. 71년 독일에 귀화, 베를린에서 작곡활동을 하는 동안 90년 북한을 방문, 남북문화교류의 첫 장을 연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80년대 말부터 국내 일부 예술단체는 그의 고국방문을 추진했으나 「친북인사」라는 낙인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제」와 지난 9월 열린 「한국창작오페라축제」에 참가하려 했으나 우여곡절끝에 무산됐다. 작품으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오페라 「심청」 「나비의 꿈」등 150여 곡이 있다. 국내 음악계 관계자들은 『윤이상음악제를 계기로 그는 음악적으로 복권됐다』며 『앞으로 우리 음악사에 공백으로 남은 그의 위치를 되찾아 주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창작오페라축제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한 국내음악인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아쉽다. 고향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곳에서 사진도 찍고… 죽으면 그 곳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유언이 된 셈이다.<김철훈 기자>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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