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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와 가벌성/박승평(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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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와 가벌성/박승평(일요시론)

입력
199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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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이 모두 들끓고 가슴아파하는 한편에서 특가법상의 뇌물죄에 해당된다느니 정치자금법 위반이니 하는 법리도 함께 돌출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실정법상의 죄를 지으면 의당 벌을 받게 되어 있으니 법조문을 따져보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문제는 이번 비자금사건같이 역사적 단죄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가벌성이 거론될 지경이면 통상의 법리만으로 과연 합당할 것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는 점이다.이참에 생각나는게 지난 93년3월18일자 프랑스 유력주간지 렉스프레스에 실렸던 권두논설이다. 「정계에 진출하는 사촌에게」라는 제목을 달아 사신 형식으로 씌어진 그 사설은 공인으로 선출된 모든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품위의 유지에 관해 언급했었다. 그리고 그같은 품위유지란 비단 법률과 도덕존중차원에서 뿐 아니라 명예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지금은 은퇴한 한 노교수도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는 모름지기 「지배이득」만 챙겨서는 안된다. 반드시 「지배대가」부터 먼저 치러야 한다고 평소 주창했었다. 그 「지배코스트」란 바로 소속집단이나 국정을 잘 이끌 수 있는 「능력」과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성실」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상 지금도 만인지상이라 할 대통령의 유일한 대표성과 막강권한을 상기할때 그 자리의 책임이 어찌 통상적인 법과 도덕의 차원에만 머물 수 있겠는가에도 생각이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고차원의 책임을 저버린 이번 비자금사건 단죄문제를 놓고 권력적 천민자본주의의 해체과정이라고까지 그 역사성을 부여하는가 하면 비자금사회의 비능률을 극복할 계기라고도 진단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의 심경이란 것도 하늘처럼 믿고 4천만이 함께 연대보증을 섰다 집과 재산을 모두 날리고 거리에 나 앉게된 처지와 다름이 없다 하겠다. 폭력을 앞세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의 주인공을 이제는 대오각성했을 것으로 믿고 연대보증의 도장마저 선선히 찍어줬었는데 폭력도 모자라 돈벼락까지 일으키고 있지 않는가.

법리상으로 봐도 연대보증처럼 어이없이 패가망신하는 일이란 또 없다. 한 사람이 빚을 안갚으면 연대보증인 모두 꼼짝없이 당하게 되어있다. 지금 한 사람이 저지른 일로 4천만 모두가 이렇게 분통이 터지고 국제사회에 낯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꼼짝없이 창피를 당하고 있는게 패가망신과 뭣이 다른가.

도덕성과 자율 및 창의에 바탕을 둔 오늘의 민주시장 경제체제 원칙을 깨뜨리는 문제도 아울러 제기된다. 민주체제의 장점이란 게 공평무사한 경쟁인데 능력보다 돈과 로비에 이끌려 국정을 재단했을 때 실력이나 창의력보다 요령과 부패가 만연하면서 국정은 병들고 그 장점도 와해되어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이동」이란 저서에서 폭력에서 돈으로, 돈에서 지식으로 인류사회의 힘의 원천이 옮겨왔음을 강조했었다. 선진국임을 애써 강조하려는 나라에서 국력의 발휘나 대외체면 세우기에 가장 헌신해야 할 대통령이 폭력과 돈의 화신이 되어 그 높은 기대가능성을 저버렸을 때 적용할 법리는 과연 어떻게 되어야 옳은 것인가.

법률이론에서 보면 기대가능성이란 바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법과 도덕차원을 넘어 품위·명예·성실·능력발휘의 기대가능성을 한몸에 지녔던 대통령이 국정문란·국력저하·체면손상은 물론이고 체제의 장점마저 결과적으로 위축시켰을 때 통상의 특가법뇌물조항이나 정치자금법위반 법리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기대나 권한이 크면 책임과 가벌성도 아울러 높아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높은 가벌성의 제도화와 함께 파괴력이 너무나 큰 대통령의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경고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야 하겠고, 국민들의 사람을 고르고 감시하는 안목도 동시에 높아져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특가법상의 뇌물죄는 10년이상 무기징역형에 해당되는 중벌이고, 정치자금법 위반은 3년이하의 징역형에 해당된다고 한다. 앞으로 비자금사건에 과연 어떤 법리가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모든 국민들이 지금 지켜보고 있다.<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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