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척결 국민여망 부응/수사아닌 구체실천 기대재계대표가 3일 발표한 자정선언은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표현되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기업인 스스로 끊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경련회장단은 이날 긴급 경제계중진회의를 열어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 기업인은 어떠한 경우이든, 어떠한 명분이든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재천명했다. 앞으로는 법이 정한방법에 의해 정치자금을 공급키로 한 것이다.
재계의 이번 선언은 과거처럼 단순한 빈말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전통적으로 갑의 위치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겨왔던 청와대가 과거정권과는 달리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 지금까지 지켜 오고 있다. 을의 위치에 있는 기업인으로서는 자신이 깨끗해지려고 해도 갑의 위치에 있는 최고권력자가 음성적 자금을 요구할 경우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 관계자들은 『5공시절 정치자금을 적게 주었다가 공중분해된 국제그룹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하곤 한다.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등 경제개혁조치도 구조적 정경유착의 근절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명제아래서는 뭉칫돈의 흐름이 모두 자동추적된다. 만약 현정부로부터 특혜를 얻기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제공했을 경우 다음 정권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노씨비자금사건이 불거진 것도 금융실명제 덕분이다.
그러나 개혁은 선언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음성적 정치자금수수를 유혹하는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재계의 정경유착단절선언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의 담배끊기와 같아서는 안된다. 국민은 재계가 과연 금단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 볼 것이다.<이백만 기자>이백만>
◎전경련 긴급회의 이모저모/동방유량·한보회장 불참/대리참석 대우 질문공세에 곤혹
○…당초 상오11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이날 회의는 20분 늦은 상오11시20분께 비공개로 시작. 최종현 전경련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가 처해있는 국가적으로 큰 문제를 풀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사건은 정치인뿐 아니라 재계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잘못된 점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침통한 표정으로 재계의 과거 관행을 인정.
○…이날 회의에는 전경련회장단외에 김상하 대한상의회장 구평회 무역협회회장 이동찬 경총회장등 경제단체장과 재계중진등 11명이 특별참석. 회의 참석대상자중 불참자는 모두 13명으로 김우중 대우 구본무 LG 박성용 금호 김승연 한화 김중원 한일 최원석 동아 강신호 동아제약회장과 조중건 한진부회장등은 해외출장이어서 참석하지 못했고 김만제 포항제철 현재현 동양 김희철 벽산회장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했다. 전경련부회장인 신명수 동방유량회장은 『나설 계제가 아니다』며, 재계중진자격으로 회의참석대상이 된 정태수 한보회장은 지방출장을 이유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김우중 회장 대신 회의에 참석한 이경훈 그룹비서실회장은 김회장의 돌연한 폴란드출장과 대우가 3백억원대의 비자금계좌를 실명전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집중적인 질문공세를 받아 몹시 곤혹스런 표정.<서사봉 기자>서사봉>
◎전경련 대국민사과문 전문
우리 기업인은 떳떳하지 못한 정치자금문제로 야기된 최근의 사태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와 충격을 끼쳐드린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 없으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이 사태에 우리 기업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일천한 근대화의 과정속에서 정치문화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해 선진국의 경우와는 달리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조성과 제공이 관행화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정경관계가 올바르게 뿌리내리지 못해 오늘의 이런 사태를 배태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현 정부는 『재임중 한푼의 돈도 기업으로부터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이를 적극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인은 이에 힘입어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정치자금에 대한 일체의 부담없이 지난 2년8개월동안 오로지 기업경영에만 전념해왔으며 올바른 정경관계를 정립해오고 있습니다. 이에따라 우리 경제계는 대·중소기업간 협력증진, 기업간 공정경쟁풍토 조성, 국제경쟁력의 제고등 새로운 기업상 구축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오늘의 불행한 사태가 야기된데 대해 깊이 자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기업인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기업경영을 통하여 국민의 신뢰속에 국민과 함께 하는 기업인상을 이뤄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기업인은 어떠한 경우든, 어떠한 명분이든,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재삼 다짐하고자 합니다.
우리 기업인은 선진경제에의 도약을 위한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약속 드림은 물론 앞으로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는 심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없도록 다짐하며 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말씀을 드립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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